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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02. 2024

25살, 40명과 여행을 했다.

시청역 8번 출구로 걸어 올라오자 날은 밝아져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어두침침한 새벽하늘이었는데, 그새 밝아진걸 보니 여름이 새삼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고 있었을 토요일 새벽 6시, 오늘 나는 가이드 행사를 하게 됐다.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여행가이드에 비해 국내여행가이드의 필요성을 낮게 생각하는 편이다. 

국내여행 하는데 가이드가 왜 필요하지?라는 의구심도 들 수 있겠지만, 저렴한 가격에 운전도 하지 않고, 국내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고, 지역 특색에 맞는 체험을 하거나 축제장도 둘러볼 수 있는 이점이 있어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는 편리하고 이점이 많은 여행패키지이다. 

국내여행패키지는 주로 당일여행코스가 많고 버스 한 대당 여행가이드가 배정되어, 그날의 여행을 진행하게 된다. 


동일한 회사의 관광버스가 시청역 8번 출구 인근을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나와 같은 옷을 입은 가이드들은 언제 도착했는지 본인들 버스 앞에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설렘을 안고 이미 나와있던 고객들은 각자 자신들이 예약한 행선지가 적힌 버스를 찾아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본사 직원이 나에게 행사 정보가 담긴 노란색 봉투를 전달해 줬다. 봉투 안에는 참여자 명단, 일정표, 기사님 정보 등이 들어있었다.  참여자 명단은 40명이었다. 

답사를 몇 번 갔다 왔지만 누군가가 하는 행사를 옆에서 보는 것과 실제 아무런 동행자 없이 혼자 처음 40명을 인솔해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초보라는 말보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이날의 나에게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어리바리했던 앞에 선배 가이드가 버스를 가리키며, 나의 버스라고 알려주었다.   


" 오늘 처음이죠?"

" 네? 네.."

" 손님들한테만 처음인 거 들키지 마요."


손님들한테 가이드인 내가 처음인걸 들키게 되면 주도권이 가이드가 아닌 손님들에게 넘어가 하루의 행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행사를 망친다는 것이 그때는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긴 잠감은 더욱 배가 되었다. 머릿속으로 처음인 것만 들키지 말자고 되뇌며, 버스 앞에 섰다. 기사님과 가벼운 인사를 하며, 명단을 들고 버스 앞에 섰다. 속속들이 손님들은 도착했고, 지정된 좌석에 착석했다. 예약된 인원이 도착했고, 버스 밖에서 쉬고 있던 기사님도 어느새 운전석에 앉았다. 출발 시간은 다가왔고, 모든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 

기사님이 나에게 마이크 위치를 알려주었다. 가이드는 여행지 출발 전 안전안내와 일정안내를 위한 정보를 손님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마이크를 들고, 버스 운전석 뒤 복도에 섰다. 40명이 오직 나만을 바라봤다.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왔다. 어제까지 달달 외워 머릿속에 저장해 뒀던 안내 멘트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초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 첫 행사를 망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이 40명의 여행을 망치면 어떻게 하지? 


" 가이드 오늘 처음이야? "


들켰다. 망쳤다. 


"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요. 우리 시간 많아요. 가이드 파이팅입니다. "


아까와는 다른 손님이 말했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기보다는 더욱 또렷하게 기억나는 시간이 있다. 

가이드를 처음 시작한 그 무렵 나는 우울한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대학교는 여러 이유로 자퇴를 했고, 취업은 쉽게 되지 않았고, 어렸을 적부터 꿨던 꿈은 멀어지고 있었다. 

여행가이드를 시작했던 이유도 여행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큰 포부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가이드 첫날, 이름만 아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응원으로 자리 잡았던 이유는 너무도 불안했던 그 무렵,  한 번쯤은 꼭 듣고 싶었던 응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 그 손님을 만나고 싶어서 한동안 명단을 받으면 그 손님부터 찾았다. 간혹 다른 버스에 탑승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으나 내가 진행하는 행사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나의 처음을 응원해 준 000님, 

당신의 응원이 지금까지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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