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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17. 2024

하루에 한 번씩 싸우는 남매들

여행 2일 차 아침, 오늘 코스 중에는 시간 배분을 잘해야 하는 코스가 2곳이나 있었다. 시간 계산을 하고 있는데 아침밥을 먹으러 가자는 친척동생의 부름에 밥이 준비된 펜션 옆 동으로 이동을 했다.


"내가 이모들한테 이런 말도 못 해?"


펜션 문을 열자마자 친척언니가 이모들에게 화를 냈다.

몇 년 전, 큰 이모부가 돌아가신 큰 이모 혼자 제주도 여행을 온 게 내심 맘에 걸려 큰 이모의 딸인 친척언니가 함께 여행을 왔었다. 말이 이모와 조카이지 남매끼리 나이차이가 있는 특성상 제일 막내 이모보다 나이가 많은 친척언니였다.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말리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에도 밥만 먹고 뒷정리도 안 하고 그냥 가고, 오늘도 밥 다 하니까 오고"

셋째 이모가 말했다.


"안 그래도 설거지하려고 했어, 미안해"

엄마가 말했다.


어제저녁부터 쌓인 게 터졌나 보다. 어제저녁에도 밥을 하고, 오늘 아침에도 밥을 한 게 내심 서운했던 셋째 이모와 언니였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의 밥의 세계.


지금 결혼하는 젊은 사람들은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모두 가사 분담이 철저하지만, 예전방식이 익숙한 어른들은 아직도 여자가 무조건 밥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 뿌리 박혀있었다.

이모들과 친척언니만 두고 우리는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이모부와 삼촌들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걱정돼서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 원래 이런데 오면 남자들이 음식하고 그러는거 알죠?"

내가 이모부들을 향해 말했다.

“그니까 그런 생각을 못했다."

막내 이모부가 말했다.

“이런일 또 반복되면 안되니까 무조건 사먹는걸로 해요”


남자들과 나는 앞으로 모든 식사는 사 먹는 걸로 결정했다.

한바탕 소동이 있은 후 우리는 여행을 위해 버스에 탑승했다


" 우리 다 같이 재밌게 놀러 왔으니까 이제부터 밥은 무조건 사 먹는 걸로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죠? "

" 네 "


8남매가 일제히 동의했다.

자리에 앉아, 오늘 저녁 식사를 먹을 장소부터 서치 했다. 마침 숙소 근처에 평점이 좋은 흑돼지식당이 있어서 바로 예약했다. 그리고, 내일 먹을 아침으로 평소에 알고 있던 해장국집도 바로 예약했다.


밥이란 뭘까?

놀러 와서까지 밥으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이 지겨운 밥.

어릴 적, 엄마와 이모, 셋이서 옷을 사러 갔을때였다.

그때 이모가 "뭐해서 밥 먹고 살지?"라는 말을 했었다.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갑자기 이모가 하던 일이 문제가 생겼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이모들을 밥이 괴롭히고 있었나 보다. 아마도 그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오설록 뮤지엄에 도착해 은근슬쩍 싸운 이모들끼리 사진을 찍으라고 모이라고 했다.

쭈뼛쭈뼛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하는데, 다른 8남매들이 여기저기 훈수를 둔다.

좀 더 붙으라느니, 어깨동무를 하라느니, 등등의 훈수였다.

녹차밭에서 사진을 찍은 후 의자에 앉아 녹차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싸운 이모와 친척언니가 어느새 옆에 앉아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자매싸움도 칼로 물 베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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