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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Sep 15. 2024

패닉에 빠진 나와 여행했다.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3월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곳이 있다. 바로, 전라남도 광양매화마을이다.  봄 꽃 중에 가장 먼저 피는 매화의 봉우리가 터지면 섬진강변과 청매실 농원 인근인 매화마을은 매화축제 준비로 들썩인다.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매화마을축제는 전국에서 진행하는 봄꽃 축제 중에 가장 처음 하는 축제면서, 봄을 알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전국에서 하는 축제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축제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매화와 벚꽃은 꽃잎모양부터 색깔이 비슷해 많이 헷갈려하는데, 매화와 벚꽃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벚꽃, 가까이 붙어있는 것이 매화다. 그래서 바람에 쉽게 떨어지는 벚꽃과는 달리 벚꽃보다는 강하게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가 없는 벚꽃과는 달리 5월이 제철인 매실이 매화의 열매인 것도 차별점이다. 

한국관광공사 발췌이미지 [광양 매화마을 축제]

매화축제가 있는 광양으로 배정이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여행사보다 빨리 도착하고, 다른 여행사보다 가장 빨리 마을을 빠져나와야 한다. 축제기간 동안 일반 고객은 물론이고, 하루에 300~400대 이상의 버스들이 매화마을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몇 시간 동안 주차장에 갇히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봄을 느끼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주차장 전쟁을 치러야 한다.  

총 10대의 버스가 광양으로 떠났다. 우리 여행사가 이 정도로 출발했다면, 전국각지의 모든 여행사들까지 포함하면 수백 대의 버스가 출발했을 것이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전략은 출발지에서부터 시작한다. 다른 코스의 경우 고객들이 집결시간에 늦게 되면 5분에서 10분 정도는 기다려주기도 하지만 광양 매화마을은 절대 기다릴 수 없다. 출발시간 5분 10분 차이가 나중에는 1시간 2시간의 차이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걸 고객들도 아는 모양인지 광양을 출발할 때는 절대 늦는 고객들은 없다. 휴게소에서도 시간을 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화장실만 다녀올 수 있게 안내한다.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한 버스가 5시간 만에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오전 10시면 비교적 괜찮은 시간대였다. 축제장에서의 주차의 핵심은 최대한 주차장 입구 쪽에다가 주차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뒤에 오는 차들에 의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가 있다. 우리의 버스는 앞쪽에서 조금 뒤쪽에다가 주차를 했다. 가장 좋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고객들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버스의 위치를 설명했다. 고객들은 알았다고 하며, 매화축제장으로 향했다.  

미리 도착한 가이드들은 시간 계산을 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가이드들의 식사까지 미리 주문했다. 

우리 여행사의 버스 10대 중 8대가 비교적 빠르게 도착했고, 2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곧이어 2대의 버스가 도착했고, 늦게 들어온 가이드들을 만나자 그제야 한시름 걱정을 놓았다. 

식사를 최대한 빠르게 마치고 나오자 그제야 미처 보지 못한 광양 매화마을의 매화가 보였다. 말 그대로 내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매화였다. 그즈음이 가장 매화가 아름답게 폈다는 뉴스가 나왔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만큼 걱정이 쌓이기도 했다. 


가이드의 시점과 고객의 시점에서 보는 축제의 상황은 다르다. 고객들은 최대한 많이 매화꽃을 보려고 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축제를 즐기려고 한다면, 가이드들은 오로지 주차장이다. 오로지 주차와 고객들이 버스를 잘 찾아오게 하기 위한 방법을 짜기 위해 골머리를 쏟는다. 주차장에 고객들이 처음 하차할 때 대형버스와 일반 차들이 30% 있었다면 시간이 지나 다시 집결할 때는 130% 꽉 찬 주차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럴 경우 아무리 버스의 차량 번호를 알고 갔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이 타고 온 버스를 찾기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버스와 일반 관광객들의 차로 주차장이 꽉 찼다. 가이드들은 일제히 해당 고객들에게 차량번호와 차량위치에 대한 문자와 전화를 돌렸다. 이미 버스에서 수도 없이 안내를 했지만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을 최대한 자세한 안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결시간 무렵, 나는 버스로 향했다. 하나둘 시간에 맞춰 고객들이 집결하고 있었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차량과 축제장으로 들어오려는 차량이 뒤엉켜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몇몇 고객들이 혼잡한 주차장에서 버스를 찾지 못했다. 주차장을 찾기 위해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는 고객들 탓에 전화기에 불이 났다. 안내에 따라 고객들이 버스를 찾아왔다. 당연히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했다. 


정체는 아까보다 더욱 심해졌다.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뒤엉켜 원래의 길과 샛길에서 들어오는 차들 앞에서 들어오는 차들로 주차장은 아수라장이었고 사방에서 관리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리 고객 중 아직 한 팀이 도착하지 못했다. 나의 패닉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였다.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부부에게 번갈아가면서 전화를 하기를 한참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집결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버스를 찾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는 것이다. 집결시간으로부터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버스 안 고객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전화로 버스의 위치를 설명하면서도 정체가 계속되자 버스를 출발시켰다. 더 이상 지체할 경우 주차장에서의 지체 시간을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주차되어 있는 것보다는 정체 대열에 서있는 게 더욱 빨리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버스에서 벗어나 고객들을 찾기 위해 달렸다. 내가 달리는 것보다 버스가 느렸다. 정체가 그 정도였다. 고객들에게 버스의 위치를 말해주는 대신 현재 위치를 물었다. 내가 데리러 가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을 한참만에 찾았고, 버스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렇게 주차장에서만 2시간이 흘렀다. 말이 2시간이지 지금에야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만 해도 버스 안과 밖이 전쟁터 같았고, 이 모든 일이 다 나의 잘못만 같았다. 

조금 더 빨리 출발했어야 했고, 조금 더 앞에 주차를 했어야 했고, 조금 더 상세하게 안내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온몸에 퍼졌다. 매화마을 이후의 코스는 하나도 가지 못한 상태로 서울로 출발했다. 


새벽 5시에 출발했던 일정이 밤 12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했다. 고객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나는 버스에 남아 고객들이 두고 간 물건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차에서 내렸다. 버스는 출발했고, 서울 시청역 밤거리에 넝마가 된 나 혼자 남았다.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오늘 하루 감사했다는 문자였다. 아까 늦은 그 젊은 부부였다. 

세상에 모든 일을 컨트롤할 수는 없다. 또,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때, 내가 이걸 알고 있었다면, 그날이 그나마 조금 수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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