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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an 26. 2021

신을 버린 남자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회사 홈페이지를 보고 홀딱 반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 연락이 왔을 땐 합격이 된 것 마냥 뛸 듯이 기뻤고, 면접을 본 후에는 더더욱 가고 싶은 회사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인사 담당자 이메일로 다시 한번 어필을 할 정도로. 그리고 합격이 되었을 땐,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을 정도였다. 내겐 정말이지 신의 직장이었다.


젊었다. 사람도 감각도 모두. 라떼를 들먹이는 사람은 결단코 단 한 명도 없었다. 퇴근 후의 술자리도 힐링 그 자체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 바로 출근했던 날들이 많았다. 술자리 끄트머리에는 대표도, 이사도, 실장도, 팀장도 있었다.

월급날에는 명세서와 함께 작은 선물이 모두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치를 떠는 워크숍도, 등산도 이곳에서는 특별했다. 소확행의 진정성을 이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비슷한 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만 꾸렸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 잘 어울릴 수 있었다고. 그런 회사에 A 팀장이 들어왔고, 그 기세가 꺾이기 무섭게 C 상무가 들어왔다.



미꾸라지가 바꾼 세상 


회사의 2인자였던 실장은 소확행의 창시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대표가 둘이 너무 잘 맞을 것 같다며 소개해 준 사람이 C 상무였단다. 대체 뭐가? 어떤 점이?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누가 봐도 둘은 정반대의 사람인데.


C 상무는 입사와 동시에 면담을 진행했다. 누가 자기 사람이 될 것인지 가리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실장의 갑작스러운 퇴사에 충격을 먹은 팀장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춰 자리를 지켰다. 꼿꼿함이 대쪽 같던 A 팀장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짐을 다시 싸야 했고 B 팀장(남편)은 그저 지켜봐야 했다. 아, 그 참혹함이란...!

월급날의 작은 선물이 사라진 건 시작에 불과했다. 회식 날에는 끝도 없이 파도를 타야 했고, 지루한 대서사극에 장단도 맞춰야 했다. 러브샷에 블루스 타임까지 이어지는 뻔한 자리에 빛을 잃어갔다. 회사도, 사람도 모두.    



나 이런 사람이야


하다 하다 면담이 내 차례까지 왔다. 상무는 지금 있는 그 I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싫다며 그렇게 험담을 해댔다. 팀장의 그릇은 따로 있다며 내게 팀장 자리를 약속했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상무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일러주었다. A 팀장이 왜 잘렸는지, 실장이 왜 스스로 나갔는지. 마지막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까지 했다. 결국 혼자 산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몇 날 며칠을 끈질기게 매달렸고 별의별 말을 다 들었다. 집 앞이라며 잠깐만 나와달라고, 하루 종일 니 생각뿐이라고.  


오랜 시간이 흘러 대표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그는 서운함이 가득 벤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갑자기 그만둔 이유가 뭐냐고.


대표님 매형한테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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