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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Feb 17. 2021

OO병원 홍보팀입니다

환상이 빚어낸 환장

병원 대기실 곳곳에 비치된 홍보물들과 지난 사보들, 병원(의사) 관련 뉴스 스크랩북과 환자들을 위한 작은 콘서트 포스터...


병원 홍보팀은 이런 일을 주로 하는 줄 알았다. 입사를 앞두고 도서관을 찾아 관련 서적들을 찾아 필기를 했고, 그중 몇 권의 책은 구입도 했다. 책에서 본 내용도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넘치는 열정, 차오르는 환상을 가득 품은 첫 출근 날,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을 모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병원 특성상 생사를 다투는 일은 크게 없지만 일처리는 빠를 거라 생각했다. 병원이니까. 아뿔싸. 입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사무실 출입증 하나를 주지 않아 문 앞에서 다음 사람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필요하다는 입사 서류는 즉각 제출했는데 출입증 하나 발급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쌓였던 불만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병원은 여느 회사보다도 더 회의적이었다. 실질적인 업무보다 회의를 위한 보고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연간, 월간, 주간, 일간으로 나눈 홍보 비용 대비 효과가 (설명 없이) 한눈에 보여야 했다. 그분들은 바쁘니까. 그럼에도 회의는 많았다. 각기 다른 주제였지만 역시나 중요한 건 한눈에! 였다. 그래서 홍보팀은 매일 바빴다.  



환자가 악플러가 되었다


인터넷으로 병원 이름을 검색하여 나오는 글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댓글을 남기는 것이 내 일이었다. 좋은 글에는 감사합니다 댓글을, 안 좋은 글에는 죄송하지만 글을 지워주십사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쪽지를 남겼다. 물론 안 좋은 글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그건 병원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술을 받고 퇴원을 했는데 그들이 여전히 환자라는 것이었다. 한두 명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 수가 갈수록 늘고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니 어느 순간 내가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수술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병원 측의 주장을 더는 믿을 수가 없었다. 대책도 없이 그저 입막음만 하려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그날도 역시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 문 앞에서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야외 테라스로 향하던 한 할아버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목발로 힘겹게 중심을 다잡고는 "날씨가 좋아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함께 나서서 싸워주지는 못할망정 내 손으로 그들의 입을 막지는 말자! 결심한 순간이었다.


다행이다.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아서 조용히 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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