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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Aug 26. 2021

빨리 읽는 아이들

감성적 참견 시점


논술 선생님인 줄 알았다. 초등학생 대상이었으니 아이들이 권장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면 첨삭 정도 해주는 거라 생각했다.

8, 90년대의 독후감이라 하면 줄거리가 99.9%였다. 감상평은 독후감 끄트머리 한 줄이 전부였다. 처음엔 그저 고릿적 형식에서 벗어나 마음에 와닿았던 한 줄 혹은 장면에 대한 감정들을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들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고, 남들과 달라도 창피할 필요 없다고, 마음껏 이야기하고 글로 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얘들아! 이제 틀에 박힌 독후감에서, 뻔한 감상평에서 벗어나는 거야! 나 또한 아이들의 글을 보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지극히 계산적이었지만 한편 감성적이었다. 풋, 애송이 같으니라고!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다고 누가 그르디? 사회가 특히 학원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면접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학원 이름에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속독'이란 단어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 줄은. 입사 첫날, 수업을 참관하며 진짜, 대박, 완전 충격을 받았다.



타이머만 존재할 뿐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선생님은 타이머를 들고 유유자적 아이들 사이를 걷고 있었고, 아이들은 양 손으로 교재를 들고 올곧은 자세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속독 기술을 배우는 중이란다. 교실 빽빽이 들어찬 아이들은 삑, 소리와 동시에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재빠르게 눈동자를 옮겼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새파랗게 어린아이들에게 저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다. 학대 같기도? 수능에서나 필요한 속독을 벌써 가르치다니. 천천히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읽으며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 잠깐 사이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속독 기술을 연마한 후 아이들은 이제 진짜 책을 들고 다시 삑, 소리에 글을 읽어 내려갔다. 찰나였다. 아이들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고 금방 내려놨다. 그리고 문제를 풀었다. 서술형 문제는 딱 하나였다. 답이 정해져 있는. 어쨌건 읽긴 읽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니, 너는?

그곳에서는 대화도, 작문도 필요 없었다. 선생님이 하는 일이라고는 아이들이 제대로 속독을 하고 있는지 눈동자를 확인하고, 문제를 채점하는 일이 전부였다.



엄마들이 좋아합니다

수강생 숫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한창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집에서 하루에 책을 읽는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몇 권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 모습만 봐도 엄마들은 만족했다. 게다가 책의 내용을 물으면 바로바로 답이 나오니 어찌 만족하지 않으랴마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을 잃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보다는 일단 책을 읽는 것만으로 좋은 건가?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감당할 있겠냐 물었습니다. 원장이, 선생이 몰아붙이지 않아도 부모는 알아서 전적으로 믿었다. 학원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끼니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하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수업은 쉴 틈 없이 계속 있었다. 그날도 수십 명의 학부모가 수강 신청을 하고 돌아갔다. 그 결과로 내가 들어올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능력

그런데 말입니다. 속독 학원 선생님을 뽑는데 왜 문예창작과를 나와야 하고, 독서지도사 자격증이 왜 필요할까요?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타이머를 기가 막히게 잘 누르는 순발력, 아이들의 집중력 흐트러진 눈동자를 캐치하는 시력, 몰아치는 수업을 버티는 체력을 고루 갖춘 인재가 문예창작과에 모여있는 건가. 독서지도사 자격증에 순발력, 시력, 체력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이 있는 건가. 어느 것 하나 온전치 못한 나로선 이해 불가의 자격 요건들(?)이었다.

무엇보다 내 기준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속독을 가르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나처럼 문예창작과를 나와 독서지도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학원에서 이런 자격을 필요로 한다면, 당연히 글쓰기를 가르칠 생각을 하고 올 테니까. 그런데 속독? 대학 커리큘럼 어디에도 독은 없지 말입니다.


세상에 별별 학원 다 있다지만, 이런 학원이 많이 생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휴~OO선생님~하는 소리에 잠깐 설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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