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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an 11. 2021

바람난 회사

놀러 다니는 맛

각자 사업체를 운영하던 남녀는 사업 확장을 핑계로 '사무실'을 합쳤다. 꽤 오랜 세월 썸을 탔던 둘은 동종업계이다 보니 네 친구, 내 친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친구였고  그들 모두 속속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는 절친들이었다.


사무실 오픈과 동시에 직원 1이 채용되었다. 일손이 부족한 건 1도 아니었다. 그저 많아질 것을 대비해 채용했다고 하지만 사실 직원 1은 꼭 필요한 존재, 방패막이었다. 처음에는 일하는 날보다 놀러 다닌 날이 더 많았다. 둘의 관계가 회복되면 교외의 한적한 카페나 사찰로 나들이를 갔다. 취재를 핑계로 지방을 가도 절대 1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1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여 실장이 출근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한두 시간씩 자리를 비웠으니.


어장 관리에 능한 여 실장은 밀당도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같이 당하고 또 당하는 남 실장이 애처로웠지만 어찌 됐건 팩트는 불륜이었다. 여 실장에게 제대로 농락당한 날이면 그렇게 나를 붙잡고 상담을 해왔다. 연애, 결혼, 가족, 시댁(처가), 자식, 불륜까지 막장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내용들이 가득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자꾸 보는구나, 싶은 게 다음 편이 궁금해서 월요병이 없었다.


아주 큰 건! 을 따냈다며 해외여행도 갔다. 물론 셋이! 패키지여행이었는데 나 혼자 잘 따라다니며 잘 들었다. 둘은 저 멀리서 수다를 떨며 느긋하게, 일행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왔다. 3박 4일 내내 뭐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셋이 한 자리에 있었던 건 밥 먹을 때뿐이었다. 여 실장과 같은 방을 쓴 나는 불편함에 매일같이 일찍 눈을 감았는데 잠깐 눈을 뜨면 여 실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혼자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데 왜 따라왔을까? 왜 이렇게 비참하지? 답을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거리를 유지할 것


이래저래 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담했을 때가 좋았다. 언젠가부터는 그냥 마구 불똥이 튀었다. 유난히도 히스테릭한 날에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에도 신경질을 냈다. 참다 참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 고 버럭 하면 또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때는 편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둘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 내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건 아니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여 실장은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조카 둘을 데려와 앉혔다. 유전적인 영향인지 그녀 식솔들은 여 실장이 남 실장을 대하는 것처럼 똑같이 남 실장을 대했다. 이제는 여 실장이 출근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남 실장은 여 실장의 식솔들을 극진히 모셨다. 출근을 늦게 해도,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일찍 퇴근을 해도, 일을 안 해도, 반말을 해도 다 이해를 했다. 내가 편해서 그런 거지, 하며!


관계에서 가장 쉬운 변명은 '편해서'다. 편해서 그랬다는데 화를 낼 수가 있나. 우리 이제부터 불편하게 지내요! 할 수도 없고. 내가 선을 그어야지! 결심해도 또 그런 상황이 온다. 그럼 아, 내가 또 편하게 했구나, 아차! 싶을 뿐이고...


가정만 없다면 남 실장은 진심 사랑꾼이었다. 머릿속이 온통 여 실장 생각뿐이니 일을 딸 생각도, 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일을 맡아 할 수 있을 때부터 남 실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를 않았다. 가족,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사장님은 원래 일을 시키는 사람이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 뿐.


설마 그걸 몰랐겠냐. 정확히는 남 실장에 식솔 둘까지 합쳐 셋이 뒤에서 띵가띵가 노는데 나 혼자만 일하니 괜히 심통이 났다. 편애는 사람을 쪼잔하게 만들었다. 식솔들에게 잘 보여야 여 실장 귀에 들어갈 테니. 속이 뻔했고, 그 뻔뻔함도 싫었다. 뒤늦게 밀려온 후회에 죄 없는 이불만 밤새 걷어찼다.


몰라도 되는 것은 끝까지 몰랐어야 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여 편안함을 경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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