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캐스팅의 비밀
우리 회사에 SKY 출신 많아요.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배운 사람들이 아무 회사에나 들어갈 리 없다고 생각했다. 도떼기시장이 열정 가득한 회사로 비칠 정도로 한마디 말의 힘이 엄청 강했다. 난 그 자리에서 합격이 됐고, 다음 날부터 출근을 했다. (면접에서 바로 합격이 되면 이상한 회사일 확률 90%)
길거리 캐스팅 회사였다. 어느 한 연예인의 매니저였던 분이 창업했고, 회사 소속 연예인도 다수라고 소개했다. 한때 연예인을 꿈꿨던 시절도 있었고 마침 길거리 캐스팅도 유행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여기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각 팀별로 나누어 도심 곳곳으로 흩어졌다. 중고등학생들이 하교 후에 주로 찾는 신촌, 홍대, 삼성(코엑스), 압구정 골목들을 배회했다. 선배가 시범을 보였다. 여학생 무리 중 한 명을 정해 명함을 건네며 "이러이러한 회사의 캐스팅 담당자인데 멀리서 보았는데도 눈에 띄었다."라고만 말하면 그다음부터는 주위 친구들이 알아서 바람을 잡아준다. 우리 회사에는 OOO도 있다, 연예인 생각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카메라 테스트하러 한 번 들러주라고 하면 작업 끝! 연락처 교환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 또래가 그렇듯 연예인 한 번 꿈꾸지 않은 아이가 몇이나 될까. 눈빛이 반짝이면 100% 그 주를 넘기지 않고 카메라 테스트를 하러 왔다. 타깃은 가방이나 신발, 옷(교복 외)이 '고가의' '유명' '브랜드'면 된다. 예뻐서 주는 명함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면 어제 연락처를 교환한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이 바뀔까 서둘러 카메라 테스트 날짜를 잡기 위함이었다. 부모님과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매뉴얼이 정해져 있어 큰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는 오후에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주말은 당연히 없었다. 카메라 테스트는 주말에만 가능하니까.
카메라 테스트는 100이면 100 모두 엄마와 같이 왔다. 자식(딸)의 꿈을 응원해주는 엄마들이 많아 우리나라의 미래는 참 밝다(?). 형식 상의 카메라 테스트가 끝나면 엄마를 설득할 차례였다. 객관적인 눈을 가진 엄마에게는 개성파 연예인의 이름을 대며 그들이 모두 예쁜 건 아니지 않냐는 식으로 설득을 했다. 고3 수능 끝나고 성형 수술시켜줄 거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는 엄마도 있었다.
내 아이의 미래에 투자하는데 어떤 엄마가 아까울까. 시작은 25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크게 고민하는 엄마가 없었다. '고가의' '유명' '브랜드'는 여기에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그 돈이 시작일 뿐이란 건 비밀이었다. 물론 아카데미도 운영했다. 뭘 제대로 가르치기나 할까, 싶은 게 250만 원 중 많은 돈은 '캐스팅 담당자'에게 돌아갔다.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이 지나면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더 많은 금액을 요구했는데 안타깝게도 돈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포기하는 엄마는 없었다.
이렇게 몇 건만 성공하면 한 달에 300만 원은 기본, 많이 벌면 500만 원 까지도 벌 수 있다고 했다. 누가 봐도 사기 같은데 누구 하나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매달 들어오는 돈 때문에. 사기 아니냐고 물어본들. 그 누가 사실대로 말할까. 머릿속에서 수차례 되감기를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면접 당시 회사가 내게 했던 말과 계약 직전 엄마들에게 했던 말이 똑. 같. 았. 다. 혹했던 부분도, 포기할 수 없는 미래도.
사실 한 건도 못해보고 그만둬서 하는 말이다.
get out! get the fuck out of here!
- 영화 <겟 아웃>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