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여자
신의 직장이었다. 일도 많고 야근도 잦았지만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있었고, 하는 것마다 칭찬 일색이었다. 대량의 당근으로 늘 배가 불렀다. 수습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A가 입사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A는 팀장이 되었다. 팀원이라고는 나 하나였지만 유일하게 따로 방이 있을 정도로 회사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에게 바로 전달되었던 결과물들이 팀장을 거치자 당근은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다시 또다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10개의 카피를 작성하면 팀장은 그중 한 개를 고르거나, 다시! 를 외쳤다.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팀장이 알아서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냈다. 팀장이 자리를 비운 어느 날, 예전처럼 대표에게 바로 전달된 결과물에 대표와 나는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다. 이후로 글에 있어서 만큼은 팀장을 거치지 않게 되었다. 그날 하필 팀장이 자리를 비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후 팀장은 출근과 동시에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에 회사 사람 모두가 놀랐다. 커뮤니케이션도 모두 메신저로만 했는데 어느 순간 이 팀장, 저 대리랑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회사의 인싸가 되어 있었다. 술자리 한 번 없이, 오직 메신저로만! 그리고 나와 같이 매일 밥을 먹고 술을 먹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A의 사람이 되었다. 사람 참 좋다고. 그리고 꼭 덧붙였다. 팀장한테 잘하라고, 팀장 대우 좀 해주라고. 권한 뺏지 말라고.
너네는 A 팀장을 잘 몰라요. 그 사람이요.
밖에서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둘만의 공간이었다. 팀장은 이 세 가지는 꼭 지키라고 했다.
1. 출근하면 제일 먼저 (팀장) 쓰레기통을 비울 것
2. (팀장) 책상 위를 닦을 것
3. (팀장이) 출근하면 물어보지 말고 커피를 바로 가져올 것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했다. 점심도 꼭 둘이 같이 먹어야 했는데 메뉴는 팀장이 결정한 것으로, 수저와 젓가락은 휴지 위에 가지런히, 물컵은 수시로 가득 채워야 했다. 어쩌다 끼게 된 임원 회식에서도 위의 내용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나이 얘기가 나왔고 빠른 년생이었던 A 팀장은 사회에서는 '학번'이 중요한 것 아니냐며 나보다 한참 '위'라는 것을 강조했다. 고작 두 살 차이였는데.
만세, 만세, 만세! 우리의 독립 공간은 회의실로 원상 복귀되었다. 누구나 듣고 볼 수 있는, 너도 나도 같이 있는 트인 공간으로 이동했다. 더불어 A 팀장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그게 빼앗긴 들 때문인지, B 팀장과의 교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숨통은 트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평화로웠다. A 팀장은 결혼 준비로 바빴고 또래 직원들은 다시 술로 하나되어 으쌰으쌰했다. 그 사이 회사는 C 상무를 새로 영입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