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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의 은퇴를 바라보는 심리학자의 눈

by 박진우

배우 조진웅(49)이 이른바 '소년범 논란' 이후 지난 과오에 대해 책임지겠다며 21년 간의 배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진웅은 지난 6일 소속사 사람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며 "앞으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고교 시절 범죄를 저질러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연합뉴스 기사)


나는 배우 조진웅에게 일어난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며 심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논문 중 하나가 떠올랐다. 범죄심리학과 발달심리학에선 오래된 질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의 일탈은 청소년기의 일시적 에피소드로 끝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 행동을 반복할까?


청소년기의 비행 곡선이 던지는 질문


구글 스칼라 기준 16,000회 인용된 Terrie Moffitt(1993)의 논문은 이 오래된 질문에 주목했다. 참고로, 구글 스칼라 기준 100회 인용만 돼도 상위 1~2%에 속한다. 10,000회 이상이면 상위 0.01% 레벨의 최상위 논문이라 할 수 있다. Moffitt의 연구는 이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논문으로 평가된다.



출처: Moffitt, T. E. (2017). Adolescence-limited and life-course-persistent antisocial behavior: A developmental taxonomy. Biosocial theories of crime, 69-96.


범죄통계를 보면, 10대 후반~20대 초반에 비행과 범죄가 급증하고, 이후 급속히 줄어든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 곡선에서 벗어난다. 그들의 반사회적 행동은 일시적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된다.


Moffitt은 이를 두 가지 궤적으로 구분했다.


두 개의 궤적: LCP형 vs AL형


1. Life-Course-Persistent (LCP)

- 유년기부터 공격성, 충동성, 규범 무시 경향이 나타난다.

- 신경발달적 결함, 기질적 충동성, 부모의 양육 실패, 빈곤, 범죄 환경 등이 누적된다.

- 학업 부진 - 직업 불안정 - 범죄화 등 조직화된 반사회적 경로를 밟는다.

- 반사회성은 성격의 일부로 내재화되어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누적, 강화되는 패턴을 보인다.


2. Adolescence-Limited (AL)

- 청소년기에만 일시적으로 규범을 어긴다.

- 원인은 성숙격차(maturity gap): 생물학적으로는 성인인데 사회적으로는 미성숙한 지위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 또래에게 인정받기 위한 가짜 성인 행위로 일시적 일탈을 보이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대부분 정상 경로로 돌아간다.


조진웅 사례는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조진웅 사례는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와 '개인의 변화 가능성은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두 가지 질문에 관해서 Moffitt은 과거의 일탈이 청소년기에 한정된 AL형(Adolescence-Limited)인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LCP형(Life-Course-Persistent)인지가 핵심 기준이 된다고 주장한다.


조진웅의 경우, 성인이 된 이후 폭행 논란이 제기되었다는 점은 단순히 청소년기의 일시적 일탈로만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이 사건은 AL형 경로로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다고 보기에는 복잡한 요소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조진웅의 그간의 행보를 가식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회복을 위한 시간과 노력으로 볼 것인가는 결국 우리가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우리가 평가해야 할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패턴이다.


청소년기 비행 이력이 있지만, 성인기에 정상적 경로와 더불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였다면, AL형일 가능성이 높고 회복적 정의의 관점이 필요하다. 반면, 성인기에도 폭력, 공격성, 반사회적 행동이 반복 재발되었다면, LCP형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한 용서나 이미지 회복이 아니라 책임 검증과 재발 방지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조진웅 사례는 단순히 과거의 실수에 대한 처벌 vs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검증하고,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의 변화를 어떤 기준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가 필요하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누군가의 실수를 덮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수용과 재발 방지 구조, 신뢰 복구를 포함한다.


회복적 정의의 핵심 과정은 네 단계로 정리된다.

- 사과(Apology) — 피해 인정을 포함한 진정한 사과

- 책임(Responsibility) — 행위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고 모두가 납득하는 책임 수행

- 복원(Restoration) — 피해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 재통합(Reintegration) —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적, 관계적 지원


나는 이번 사건에서 단순한 사과문 발표와 활동 중단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조진웅이 했던 회복적 정의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후속 기사다.


과거가 사람을 영원히 규정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거가 자동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회복은 처벌과 단죄가 아니라 변화의 증거에서 비롯된다.


Moffitt의 연구가 보여주듯, Adolescence-Limited(AL형) 일탈은 처벌 중심 접근보다 회복을 중심으로 한 관계 복원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다. 청소년기의 일탈 대부분은 정체성을 찾는 과정, 성숙 격차(maturity gap)에서 비롯된다. 이를 낙인(labeling)과 퇴출(exclusion)로 대응할 경우, 오히려 AL형을 LCP형의 지속적 일탈로 강화할 수 있다. 청소년기의 일탈에서 낙인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지만, 회복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우리 사회는 처벌 중심의 정의에 익숙하고, 회복적 정의의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을 영웅과 악인, 두 극단으로 갈라놓고 완전한 추락과 완전한 복귀만을 강요한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흑백의 판단이 아니라 투명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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