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26화
네 번째 방문하는 호이안. 그동안 여러 숙소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2019년에 머물렀던 에메랄드 호이안 리버사이드 리조트를 다시 찾았다. 그때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었다.
투본강 위를 배로 떠나는 무료 투어 해질녘 잔디밭에서 즐기던 로컬 음식과 함께 울려 퍼지던 라이브 음악, 베트남 커피 만들어보기 체험 모든 것이 낭만 그 자체였고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며 들은 이야기는 아쉬움을 안겼다. 리조트가 다른 회사로 인수되며 예전의 서비스는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휑해졌다.
그래도 오래된 리조트 특유의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리조트 앞에는 여전히 투본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그 풍경 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은 고요하게 나를 감쌌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느릿하게 불어왔다. 마음도 함께 느긋해졌다.
체크인 로비에 들어섰을 때 의외로 손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리조트 규모에 비해 직원 수도 적어 보였다.
'괜찮다고 들었는데…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순간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침실은 청결하지 않을까? 물은 잘 나올까?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면 어쩌지…’
온갖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체크인 시간이 아직 이르러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머릿속 불안함을 떨쳐내려는 듯 발걸음을 밖으로 향했다.
기억 속 맛집 다시 찾은 포슈아
아내가 말했다.
“작년에 맛있게 먹었던 포슈아, 다시 가볼까?”
나는 곧장 작년의 맛있는 분짜가 떠올랐다. 그 기억 하나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놀랍게도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구 시가지를 지나 익숙한 거리로 향하는데, 작년과는 다른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한산했고 한국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다낭-호이안은 한국 사람들이 워낙 많이 와봐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게 아닐까?”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조용해진 거리의 풍경을 음미했다.
작년엔 한국인 손님들로 가득했던 포슈아였지만 오늘은 서양인 두 테이블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넓은 자리에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 주문은 여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예준이는 입맛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예온이는 야무지게 라이스페이퍼 위에 채소와 고기를 올리고, 살짝 매콤한 소스를 찍어 먹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번쩍 들어 “엄지 척!”
나는 웃음이 절로 났다.
예온이는 한국에서 먹던 라이스페이퍼와는 달리, 이곳의 종이처럼 얇고 전분기 없는 식감이 낯설었는지 혀로 적시려 했다.
“얇으니까 그냥 먹어도 돼.”
말해봤지만 익숙한 방식이 그립나 보다.
그래도 곧 적응해 싸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준이도 궁금한 듯 바라봤다.
한 입이라도 먹어봤으면 좋겠지만, 약 때문에 입맛이 없는 걸 알기에 섣불리 권할 수 없었다.
“맛있는데, 그냥 입맛이 없어…”
예준이는 종이접기를 하며 중얼거렸다.
안쓰럽고 속상한 마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래도 아내가 싸준 음식을 몇 번 받아먹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부모님도 맛있게 드셨다. 다들 식사에 만족한 표정이었고, 분위기는 따뜻했다.
따뜻한 분짜 소스, 현지의 바람, 조용한 거리…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마음까지 포근해졌다. 한국에서 먹던 차가운 소스보다, 이 따뜻한 소스가 왠지 더 정겹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친 뒤 여유로운 시간.
호이안에 오면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르던 콩카페로 향했다.
익숙한 외관 따뜻한 조명 그리고 베트남 특유의 빈티지 감성.
하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젠 콩카페도 중국인, 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이 되었다.
러시아 등 해외 지점도 생겼다는 걸 인테리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한국에도 콩카페가 있지만 이 분위기는 베트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카페가 이곳에서는 늘 특별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평소처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눴다.
아오자이를 입은 부모님의 모습을 정성스레 담아드렸다.
사람이 많을 땐 부끄러워하시던 부모님도 오늘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셨다.
그 모습이 참 따뜻하고 정겨웠다.
누군가의 시선 없이 온전히 가족만의 시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었다.
사진 속 부모님의 환한 웃음 그리고 그 뒤로 흐르는 베트남의 시간.
이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