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들어주는 남해 보리암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by 김영욱

갑자기 추워진 날씨, 계획했던 매물도 대신 남해로 길을 잡은 이유는 따뜻했던 남해독일마을 골목길이 올라서다. 높다란 돌담 따스하게 달구던 겨울햇살을 이리도 오래 기억하게 된 걸까? 그날 돌담아래 좌판서 2만원 주고 구입했던 회중시계 요놈이 9년 동안 다시 찾아주길 기다렸나 보다.


이런저런 지난 기억들 넘어 삼천포 대교가 보였다.

육로를 이용해서 남해에 들어갈 때 남해대교나 삼천포 대교를 반듯이 건너야 한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이 길을 지날 때면 옆에서 곤히 자는 아내를 깨워 같이 보곤 했는데, 파란 하늘과 초록바다를 가르는 붉은 철교는 작은데 웅장하고, 옛스럽지만 고급지다. 남해를 돌아 나갈 때도 일부러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다.


점심때를 놓쳤는데 창선 대교를 지나자 커다란 수타 중국집 간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식탐이 많지 않아 배고프면 먹는 스타일인데 돌아다니다 갑자기 당이 떨어질 때는 간혹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테이블에 놓인 실물을 스캔하면 된다.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약속이나 한 듯 해물짬뽕이 놓여 있었다. 중국집인데 짜장면이 없었다.

오징어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있는 것만 봐도 비주얼 끝판왕!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싱싱한 홍합까지...

와~ 정말 맛있다!

국물까지 싹 비울만큼...


"사장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해물이 끝내주네요?"

계산을 하며 주인장과 간단하게나마 인사를 나누는 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의 표현이다.


장바구니를 들고 갓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차 소리를 들었는지 뒤돌아서 손을 들다마는 제스처를 하셨다.


"타세요! 할머니" 주저 없이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는지 묻지도 않았다.


"시장 다녀오십니꺼?"

"버스가 1시간 넘게 남아서 걸었는데, 억시로 춥네 ㅎㅎ.."


고향이 합천이고, 집은 양산이라며 내가 나고 사는 곳을 소개했더니 양산 근처 사는 친인척과 자녀들, 합천 해인사와 양산 통도사에서 불공드린 얘기까지 하시며 태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길게도 하셨다.


언제 내리실지 모르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시속 20km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내일 금산에 갈 건데, 거기에 유명한 사찰이 있다면서요 할머니?"

보리암 얘기를 슬쩍 꺼냈다.


할머니의 보리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3대 사찰이 있는데.... 보리암이 그중 하나지...

소원을 빌면 하나는 꼭 이뤄 주니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이 어디지?

3대 사찰을 들어본 것 같긴 한데 보리암이 있었나? 할머니와 헤어지고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전남 송광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라고 한다.

아무튼 할머니 덕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ㅋㅋ


할머니 마음속에 있는 3대 사찰 중 하나인 보리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ㅎㅎ


은모래 해변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아침 보리암 산행을 할 생각이었다.

관리사무소에 갔더니 아무래도 오늘 야영을 혼자 할거 같다면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평일이고 더군다나 겨울이어서 겨울바다 야영을 하는 이가 나뿐이었나 보다.


'오늘밤 은모래 해변은 당신 것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더할 나위 없이 감상적인 멘트로 들렸다.

은모래해변 최고 뷰포인트에 텐트를 치고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해변을 산책하던 아저씨가 홍합탕에 혼술하고 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근처 폐가를 얻어 집시생활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낮추어 소개했다.


세상으로부터 현실도피 중이라는 자신의 과거를 서슴없이 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소통의 문제로 오해와 불신이 잦았고, 결국 사회와 단절하고 도망치듯 살아온 지난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한다.


여행이 이 사람을 변화시킨 걸까? 아니면 세월이 변하게 한 걸까?

내 앞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하고 솔직하게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서 사회로부터 격리될 만큼 냉혹한 무언가가 이상 존재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 돌아가실 생각이세요?"

"다음 여행지는 양산 통도산데? 허허"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서 나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꼈을까?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다.

혼자가 아니면 절대 만날 수 없는 인연을 길 위에 만난다.

밤하늘 수많은 별들과 함께...


등산 초입부터 급경사다. 지금은 금방 숨이 차서 죽을 건 같지만 조금만 참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해할 나를 상상하며 힘을 냈다.


자연이 만들어내 쌍홍문,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할 것 같은 그 커다란 구멍 사이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대가를 치르려는 듯 금산은 내게 시원한 바람과 넓디넓은 남해바다를 내어 주었다.

가슴이 뻥 뚫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안에 병이 있다면 씻은 듯 다 나은 듯했다.


보리암 오르는 이 길에서

이미 내 소원은 벌써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