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와 황토와 햇살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오후, 아이와 늦은 산책길에 나섰다. 집 뒷산에 조성된 황톳길에 가기 위해서다. 찬은 황톳길 맨발 걷기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황톳길 안에서도 말랑말랑하게 관리된 면적을 사랑한다. 동네 주민 한 분의 수고로 발의 압력에 따라 부드럽게 눌리는 원 모양, 작은 황토 우주가 유지되고 있다. 나는 길을 따라 걷기도 하지만 찬은 주로 황토 우주 안에서 흙의 색과 촉감을 만끽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황톳길을 향해 가던 산의 초입. 동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조망 데크 위에 설치된 나무 그네 뒤로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찬이 그네를 타려고 해서 뒤로 세게 밀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시선이 머문다. 키나 걷는 모양을 보아 돌이 조금 지난 아이겠구나 싶다.
“돌 조금 지났죠?”
“아니요, 두 돌 다됐죠.”
이런! 느린 아이를 둘씩 키웠으면서도 일반적 시선의 질문이라니. ‘몇 개월이에요?’라거나 ‘한창 열심히 걸을 때네요.’ 같은 좋은 표현도 있건만.
그네 타는 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 엄마라기엔 나이가 들어 뵈고, 할머니라기엔 젊어 뵈는 보호자가 말을 건다.
“오빠 해봐. 오빠, 오빠…”
아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찬의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찬이 대신 말한다, “오빠!”
대화를 나눠보니 보호자는 엄마도 할머니도 아니었다. 집 근처 청각장애 전문학교. 찬이 유아 때 다녔던 그 학교 옆에는 기숙사 건물이 있었는데, 아이는 그곳에 살고 있었고 아이를 돌보는 선생님이 함께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스무 명쯤 되는, 부모가 키우지 못하는 열 살 미만의 청각장애 아이들이 거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보이는 사물, 사람… 곳곳마다 오래 시선이 머무는 아이였다. 청각 자극이 입력되지 않아 시각 자극에 더 집중하는 것일까? 찬과 같은 소이증(귀가 작음)을 가져 더 반가웠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달팽이관이나 청신경계에 손상이 있는 감각신경성 난청을 동반하는 것 같았고, 24개월 무렵까지 보청기나 인공 와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구어(음성 언어) 발달 예후는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이 아이는 현재 소리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오빠”라는 입 모양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겠지. 늘 전반적인 발달 상태와 의사소통 수준을 관찰해왔다 보니 나도 모르게 줄줄이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태어나서 부모를 떠나 양육이 위탁되며, 여러 가지 대처도 늦어졌을 과정들. 하지만 지금 옆에 딸처럼 살뜰히 챙기는 선생님이 있고 필요한 진료도 받을 수 있어서, 소리는 몰라도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서, 자주 넘어지면서도 산책 나와 세상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사회가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10년 전의 내가 이 장면을 만났더라면, 측은지심이나 아이가 커가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정도가 스쳤으리라. 아이는 스무 살이 되면 성인 시설로 옮긴다는데, 그럼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살아야겠구나. 태어날 때부터 곁을 지켰던 사람들과 몇십 년 의지하며 아옹다옹 사는 건 이 아이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구나.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의 고비를 맞는 시절에, 당연하다는 듯이 떠밀려 옮겨가지 않았으면. 최대한 너의 의사가 반영되고 너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길. 아이가 인생에서 맞닥뜨릴 모든 순간에 당당한 주체로 살아갔으면 싶다.
장애가 있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편리함이 우선시되어 너의 소중한 감정과 생각들이 인형의 그것처럼 취급받지 않기를, 그러지 않기를…
“내가 얘 엄마 해주려고요.”
익숙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담백했다. 아이의 발달을 위해 일반 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닌다고 하시니, 부모 못지않은 정성이 느껴졌다. 그러나 선생님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형편상 아이와 헤어지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부디 그 헤어짐도 담백할 수 있기를….
불편함을 가진 상태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산다는 건, 그렇게 하도록 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부족함을 전제로 무엇인가 채워주고, 대신 판단해 주고, 지시해야 하는 존재로 타자화되기 쉽다.
좋아하는 물건에 강한 집착을 가진 찬이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학습을 하고 보상으로 똑같은 장난감을 수없이 사도, 똑같은 걸 계속 산다고 불평할 수는 있지만 “똑같은 건 그만!”이라고 결정해버릴 수는 없다. 집착이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억지로 이끌 수는 없다. 아주 천천히 상상 놀이를 시도하고, 같은 전래 동화의 한 구간을 무한히 반복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한 가지 자극이 그토록 매일 신선하게 즐겁다는 것에 탄복한다.
훈은 단어를 통째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금세 한글을 배웠다. 찬은 그런 방법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학습지도 소용없었다. 찬은 문자를 보면서 각각의 소리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거였다. 소리의 위치에 따른 발음을 문자와 대응시킬 수 있도록 조음 기관의 움직임을 알려주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했다. 받침소리는 특히 어려웠다. 지금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바탕으로 검색어를 입력하는 찬을 보면 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적까지는 아니라 해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른다. 그 어려운 걸 함께 해냈지, 우리가! 1학년이 끝난 긴긴 겨울 방학에 매일매일! 맞춤형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한글을 익히고 난 후 찬의 발음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전보다 소리를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어서다.
끝은 없다. 한글만 떼면 끝나는 건 아니라서 산 넘어 산이다. 그렇다고 매번 산을 넘으라고 강요할 순 없으니 미끼를 던지며 유혹할 뿐. 내가 생각해도 불친절하게 버럭버럭하는 엄마와 공부하는 건 극한 노동이니까. 어쩌겠니? 어디 가서 할 데가 없는걸. 어디 많이 가는 건 네가 싫다며?
찬도 한글을 배우고 싶어서 잘 협조해 준 거라고 믿는다. 1학년 내내 교실에서 웃고 돌아다니며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던 찬이 겨우내 성실하게 엄마와 공부한 건, 분명 욕구가 있어서였을 거라고. 지금처럼 스티커 모으기에 집착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혹시 원하는 장난감 검색하고 싶어서? 이젠 몰래 주문도 해서 취소하느라 바쁘다. 손가락으로 쓱 밀면 주문 완료이니 쉬워도 너무 쉽다.
황톳길이 조성된 숲속 운동장. 아직은 아이의 여린 살결이 온전히 보존되고 있지만, 조만간 모기들의 만찬에 초대될 조짐이 보이는 날씨다. 다음에는 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와야겠다. 찬이 발로 맘껏 황토를 짓이기고 꾹꾹 밟아내며 감촉을 느낀다. 색감을 눈에 담는다. 색에 민감하여 볼 때마다 ‘황갈색이에요!’ 말하며 되새긴다. 다 부지런히 가꿔 주신 아저씨 덕이다.
그래, 그렇게 세상을 발로 꾹꾹 눌러봐. 온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배워가렴. 다수에 맞춰진 환경에서도 너의 작은 영역을 찾아내어 즐겁게 걷기를. 운동을 목표로 딱딱한 황톳길을 빠르게 돌고 도는 어른들이 느끼지 못하는 황토의 참맛을 마음에 천천히 담아내듯, 세상을 천천히 꼭꼭 눌러 담기 바래.
어느새 한 아주머니가 찬의 옆에서 꾹꾹 걸음에 동참한다. 작은 운동장을 맴돌며 한 번씩 손을 흔드는 엄마 대신 아주머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걷는 찬의 모습. 고운 황토, 발바닥에 온전히 전해지는 촉감, 청량한 새소리, 스치는 바람, 이웃의 다정한 목소리, 황갈색과 연녹색의 조화. 지금, 찬을 둘러싼 이토록 완벽한 환경이 마음의 부드러운 토양으로 쌓여가기를.
서툰 걸음으로 멀어져 갔던 처음 만난 여자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는데 깜빡 잊고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인연이 닿아 다시 만날 수 있길. 부디 잘 가꾼 황토밭을 충분히 밟으며 지냈으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도망갈 힘이 생길 만큼, 따져 물을 용기가 생길 만큼 다리도, 마음도 튼튼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