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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해산책방

18인의 'Gloomy relay'에 이어-(2)

My Gloomy relay

by 해산

대부분, 혼자 방문하지 않는 우울 씨


가장 최근 우울 씨의 방문은 관계 속 부딪힘과 함께였다.

긴장되는 만남으로 가득 찼던 2주간의 시간이 지났다. 예상치 못했던 분들과의 만남, 깊은 대화, 또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과의 만남…. 한 사람에게 난 어디에서도 받은 적 없었던 감사의 표현으로 흐뭇한 감동을 전해준 사람이었고, 다른 이에게는 몰랐던 장애 아동 부모들의 요즘 동향을 읽게 해 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겐 든든한 협력자였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교사를 믿지 않고 아이의 사회성에 관심이 없는 엄마로 오해받기도 했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각각의 타인에게 모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이해관계, 성향과 가치관이 나의 세계로 들어왔을 때 모두의 언어는 달랐고 각자 다른 물건을 집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는 말도 있듯, 모두에게 나쁜 사람인 이도 없겠지. 한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 요소들이 버무려진 덩이가 타인의 덩이와 만났을 때, 덩이들의 부대낌 속에서 우린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부드러운 부대낌은 곧 흘려보내게 된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미소로 바라보다 돌아서 잊어버린다. 본능은 위험에 대처하는 일에 더 충실하므로. 불만족스럽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만남을 더 곱씹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예 대화가 안 통하는 꼴통이 되었다. 글쎄, 십 년 넘게 자녀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온갖 방법을 고민해 온 양육자를 자신의 기준으로 단정 지은 후 배제하고 진행하는 교육이 과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2년도 못 되게 내 아이를 띄엄띄엄 봤을 뿐인데. 그가 ‘아, 나를 정말 믿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기까지 나의 행동이 영향을 끼친 측면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우린 타인을 언제부터,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믿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일까? 믿음을 주지 못한 사람이 문제일까? 보통 서로 알아가고 노력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인데. 장애 아동의 양육자는 누군가를 무작정 믿어야 하는 건가? 어렵다.

나는 그를 믿지 않기로 작정한 적이 없다. 무의식이 아직 믿지 못하는 것까지 비난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믿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대화를 통해 확인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지. 충분한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신뢰를 쌓을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왜 믿음을 요구하는지, 그가 원하는 종류의 믿음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덩이가 부딪혀 일그러지고 조각이 떨어지는 느낌. 나의 세계를 왜곡하고 일방적으로 나가버린 이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 타인의 시선이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화살로 날아올 때 우울감은 깊어진다. 시선의 화살이 내게 향하지 않도록 잡아 옆으로 물려 놓아두는 힘. 다행히 그런 힘이 있다면 다음 문제는 나도 그에게 타인이라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그의 세계로 내 마음이 성큼 들어섰을 때, 나 또한 그 세계 속 어떤 물건도 곱게 바라봐지지 않는다. ‘뭐, 너도 살 거 없는데?’라는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던진 후 싸늘한 시선을 남긴 채 나가버리고 싶다. 실망이 연주하는 삐걱대는 선율이 그의 모든 세계를 왜곡하고 싶은 욕망으로 변주된다.


타인의 부당함과 나의 우울 속 생각들, 그리고 타인인 나. 각각의 얼굴을 찬찬히 응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우울감이 막 발효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힘껏 올라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할 때를 견뎌야 한다. 에너지를 섣불리 낭비하며 피하지 않아야 한다. 맑고 차게 식은 물속에서 부유하는 물질들의 정체를 확인할 때까지. 그렇게 견딜 힘은, 하루치 햇살과 바람을 그냥 보내지 않는 마음으로부터 쌓인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과 나누는 짧은 인사,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웃음과 여전한 걸음들, 좋아하는 음악이 전해준 위로…. 무엇보다 내 아이의 순전한 미소로부터. 더 사랑하고자 노력하게 했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던 날 향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의 몸짓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인다.


일방적인 평가의 시선과 함께 찾아온 우울 씨를 나는 그렇게 맞이하고 함께 지냈으며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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