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
해산
오래전 청와대 소속 군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청와대로 갔다. 남자친구라 하기에는 잘 모르던 사이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든, 검은 정장 차림의 장정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끝없는 벌판 같던 곳. 호기심 찬 눈으로 관찰할 뿐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다. 알록달록 남방을 입고 혼자만 부지런히 걷는 개체였던 난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는 민간인 여자.
어떻게 오셨어요?
알록달록 풍선. 얇게 부풀어 오른 꿈. 깜짝 등장해서 사랑 비슷한 마음을 터뜨릴 꿈을 안고 길도 모른 채 헤매는 소녀에게 검은 사내 한 명이 오류를 설명해 주었다. 주둔지는 따로 있다고……
수북이 쏟아부은 별사탕처럼 알록달록했고 다디달았던 마음. 더운 공기로 가득 찼었던 마음이, 너와 나의 거리 사이에 있었다. 모름이 길이 되어 거리를 창조했으며 길목마다 어린 상상이 기대어 쉬었다.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은 이전보다 쭈글쭈글해지고 만다.
뒤늦게 보았다.
군대에서 키보드로 친 편지를 부쳤던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이. 해묵은 상자 속 그의 편지 중 인쇄물은 단 두 통. 수두룩한 손편지에 담긴 어린 남자의 고마움, 미안함, 노력, 물음표 섞인 애정. 아무리 인기 많은 사내라도 군대에 있는 동안 잘해준 여자는 각별한 법이라 영영 기억에 스치겠지, 아마….
유효 기간 지난 텁텁한 비스킷을 커피 물에 살짝 담가 씹어도 제법 단맛이 나. 우린 모르는 것을 사랑했고, 난 검은 정장 입은 무전기 든 사내가 길을 알려주길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내 알록달록하게 부풀어 오를,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때 이후 시인은 오늘도 모르는 것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