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
며느리는 추석 전날에 바닷가를 걷는다
명절과 명절이 아닌 날에 하는 일 사이의 교집합을 찾으러
태양은 투명 필름에 인쇄된 미소를 붙이고 오래된 빛을 가시처럼 쏘아대고 있다
명절에 하는 일에 대한 설교가 해수면(海水面) 위에 빛나고 있었다
명절에 필요한 종류의 미소는
이런 것이야……
……
……
바람 너!
장난기 많은 바람이 태양의 얼굴에 붙은 미소를 떼어
뒷말을 피해 달아나며 떨어뜨린 필름을 나는
주워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넣었다 뺐다, 자유를 얻은 미소가 다리 춤에서 버석거렸다
아이들은 갯벌을 뛰어다니고
아빠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머물고
2층짜리 정자에 걸터앉은 이들은 모두 바다를 오래오래 바라보며
길고 짧은 가시들이 찬란히 빛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곧 밤이잖아
정자 옆 카페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바닷가에 나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떨어진 가시가 바다에서 흐물흐물해질 때쯤
피를 묽게 희석해 마신 보름달이 오실 거야
소원 따위에 관심은 없지만 너의 소원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달님
가자,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