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틈을 보다

by 해산

틈을 보다

해산



틈이 벌어졌다

틈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걸었다

살았다

말이 공기를 찢고 날아든 파편이 되고

눈빛 하나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틈을 파기도 했다


틈이 벌어지고

어느 날 전부가 돼버린 것 같고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랐다

시작이 보이지 않았다

틈이 아니게 되어서야 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틈이 벌어지는 줄 몰랐던 한 날이 있었다

꽃으로 피어나는 시절, 연노랑 종이 장에 추억을 쓰려던 날

날아드는 꽃잎들

틈은 소리 없이 거대해졌고

죽음으로 가는 틈이 되었다

꽃이 틈으로, 틈으로 밀려 들어갔다

손으로 가릴 수 없게 된 틈 사이로, 끝없이……

꽃은 물이 되어 차올라 틈 위로 넘쳐흘렀다 흐르지 못한 강이 흐르고야 마는 이야기는 영원하므로

모두가 틈을 보았다

여기 틈이 있었어요, 찢어지는 종이처럼 외쳤다


틈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오늘도 틈을 딛고 걷는다

탑을 쌓으며

먹는다

좋게 틈을 발견하면

이 정도는 괜찮아, 틈처럼 말하지 않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