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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공간에서 평안하길

by 해산

공간의 노래

해산



바라는 것의 반대가 쌓이던 시간이 있었다. 유리그릇이 깨지는 소리 뒤에는 길게 줄 선 소멸이 기다렸다.

실패만큼 쌓인 죽음의 공들이 매일 내게 날아올 때, 잡아 던지지 못하고 여기저기 맞았다. 공을 잡기엔 어두웠으므로. 멍과 함께 불그죽죽 물들어가던 마음이 죽음에 익숙해져 갈 무렵. 곁에 수북한 공들이 입 모아 화음을 내었다.

죽어라. 죽어.


공이 날아오고 튕겨 나가던 어느 날. 공 사이 틈을 보았다. 아니, 틈이 나를 먼저 보았다.

틈을 좇아 뛰었다. 바라는 것과 죽음 사이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공처럼 공간도 보이지 않았지만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작다고 생각했다. 작은 손을 잡고 싶었다.

반딧불 하나 반짝. 공간이 켜졌다. 생각보다 빈틈이 많았던 세상. 반딧불이가 늘어날수록 사방이 환해져 이제 공이 공간을 찾기 시작하고


공간을 찾는 공을 내버려 두었다. 날아가 부딪힐 표적을 잃은 공이 부유하는 모습을, 되찾은 공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랐던 것들을 생각하고 공에 대해 노래했다. 몸에 붙은 반딧불이와 함께 화음을 낸다. 저며드는 작은 목소리로.

생각보다 큰 손이 쓰다듬는다. 화음에 춤을 추듯이.

부탁하고 싶어진다.

공이 쌓여가는 어둠 속, 공간을 보지 못하고 어딘가에 앉아있을 다른 존재를 위해. 흑백으로 덮인 세상은 바둑판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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