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간 아내의 세 발짝 뒤에 섰던 남자

여왕을 지킨 남자들: 필립 공

by 히스토리퀸

영국은 여왕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여왕이 통치하면 나라가 잘 된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죠. 영국의 성군이라 하면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 같은 여왕들을 떠올리니까요(그렇다고 왕들이 무능했던 건 아니에요. 에드워드 1세, 헨리 5세 같은 왕들은 흠점이 있더라도 명군으로 인정받아요). 그래도 여왕들이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죠. 앤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위의 두 여왕보다는 못하더라도 평판이 좋은 인물이고요. 여왕들이 통치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외조가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앨버트 공이 있고,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필립 공이 있었죠(앤 여왕의 남편은 일찍 요절했던 것으로 압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엘리자베스 1세에게도 프란시스 윌싱엄, 로버트 더들리 같은 최측근이나 정부가 있었고요. 이번에는 얼마 전에 별세한 필립 공의 생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의 몰락한 왕자, 필리포스

필립은 1921년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 공녀 앨리스의 외아들(4녀 1남)로 태어납니다. 아버지 안드레아스가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인 이유는 아버지(필립에게는 할아버지)가 그리스의 왕 요르요스 1세이고 할아버지(필립에게는 증조할아버지)가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9세였기 때문이죠. 안드레아스는 아버지가 그리스의 왕위에 있을 때 태어나서, 주로 그리스에서 성년기에 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필립도 그리스 코르푸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때 이름은 그리스어인 '필리포스'였죠. 부모가 30대 중후반에 낳은 늦둥이로 첫째 누나와는 무려 16살이, 넷째 누나와는 7살이 차이 났습니다.


하지만 1922년,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하면서 필리포스의 큰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위합니다. 안드레아스 일가에는 추방령이 내려졌죠. 필리포스가 두 살이었을 때였어요. 어머니 앨리스는 영국의 국왕 조지 5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왜 그리스의 왕비가 영국의 국왕에게 도움을 청할까요?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로 어릴 때 영국 왕실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필립에겐 외할아버지)에게서 바텐베르크 작위를 물려받아 바텐베르크 공녀가 되죠. 빅토리아 여왕은 얌전하게 예쁜 앨리스를 총애해서 조지 5세의 결혼식에서 화동을 맡기기도 했고요. 기댈 곳이 외가밖에 없기도 했지만 이때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었을 수도 있을 듯해요. 아무튼, 조지 5세는 배를 타고 영국으로 올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필리포스는 상자 속 요람에 눕혀 영국으로 향하죠.



필리포스의 유년 시절(출처: 나무위키)


영국의 왕세녀를 만나다

필리포스는 영국으로 가기 전, 잠시 프랑스의 친척 집에서 지냅니다. 이때 찍은 가족사진이 남아 있는데 이 사진을 찍은 후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죠. 1928년 필리포스는 영국으로 가서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으나, 1930년 어머니 앨리스가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했거든요. 어머니의 정신병 이력 때문에 혼사에 걸림돌이 될까 봐 누나들은 부랴부랴 시집을 갑니다. 아버지는 모나코에서 도박과 주색에 취해 살다가 1944년에 객사했죠. 그래도 필리포스는 부족함 없이 자랍니다. 외숙모가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았고 외삼촌과 외숙모는 훤칠하고 바른 청년이었던 필리포스를 총애했거든요. 필리포스도 외삼촌을 아버지로 생각했죠. 이때만 해도 필리포스는 영국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해군 장교를 목표로 살았습니다.



필리포스의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리포스다(출처: 나무위키)


1939년, 필리포스의 운명을 바꿀 상대를 만납니다. 영국 왕 조지 6세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가 나타난 거죠. 엘리자베스는 말이 좋아 공주지 실제로는 왕위를 이을 왕세녀였어요. 왕실 일가가 해군사관학교에 시찰하러 왔는데 필립이 외삼촌의 요청을 받고 왕실 일가를 안내하면서 둘이 만나게 된 것이죠. 당시 필리포스는 18살, 엘리자베스는 13살이었습니다. 13살 소녀 엘리자베스는 훤칠하고 잘생긴 필리포스에게 반하게 됩니다(그리스 신 같았다고 하죠). 이때의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질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해군사관학교 시절의 필리포스(출처: 나무위키)


신랑의 가족들이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

엘리자베스는 이후, 필리포스에게 계속 편지를 쓰고 사관학교를 찾아가며 구애합니다. 필리포스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하고 있었죠. 필리포스는 마지못해 답장을 보냅니다. 그에게 엘리자베스는 아직 어린아이(공주이니까 어쩔 수 없이...)였고,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되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느라 고생 중이었으니... 귀찮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1943년, 왕궁으로 초대된 필리포스는 엘리자베스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17살이 된 엘리자베스는 어엿한 숙녀로 성장했죠. 결국 1946년 필리포스는 왕에게 정식으로 청합니다.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주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냅니다. 필리포스도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자였으니 영국 왕실의 일원인 셈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으로 참전해서 충성심도 입증했죠. 문제는 필리포스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위 단락에서 언급했듯, 부모들의 상태가 온전치 않았어요.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누나의 남편, 즉 매형들이 독일군으로 활동했다는 겁니다. 당시 독일군은 나치와 연계되어 있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세계대전 직후였으니, 영국인들은 독일에 강한 적개심을 품은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조지 6세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되 필리포스에게 영국식으로 개명하라고 하죠. 필리포스는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한 뒤 영국으로 귀화합니다(마운트배튼은 어머니의 성 바텐베르크를 영국식으로 부른 것입니다). 종교도 개종하고요. 1947년 7월 9일 약혼 소식을 발표하고, 1947년 11월 20일 결혼식을 올립니다. 필리포스의 가족들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로요.


엘리자베스와 필립의 결혼식(출처: 조선일보)


여왕의 남편으로 활동하다

필리포스는 공주의 남편이 된 뒤에도 해군에 복무합니다. 함장이 되기도 했으나,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두 사람은 국왕 대리가 됩니다. 필리포스는 해군에서 제대했죠. 30대 초반에 그동안 쌓아온 군 경력을 포기한 거죠. 1952년 2월 6일 케냐에서 순방을 하다가(당시, 케냐는 영연방 국가 중 하나였어요. 영연방 순방은 왕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고 해요), 조지 6세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합니다. 그리고 1953년 엘리자베스 공주는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필립은 아내의 앞에 꿇어앉아 충성 맹세를 하죠. 이때부터 필립은 에든버러 공작, 필립 공 전하로 불리게 됩니다. 앨버트 공에 이은 두 번째 국서(여왕의 남편)가 된 거죠. 사실 즉위 초반에는 갈등이 많았다고 해요. 필립 공은 이른 나이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필립 공은 뮤지컬 가수와의 염문설이 떠돌기도 했죠. 어떤 신문에서는 '필립 공의 사생아는 24명'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어요. 희한한 건 이때 여왕도 경주마 매니저와 염문설이 떠돕니다. 영국 왕실에서는 모두 소설이라면서 항변했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평탄한 부부 생활을 이어갑니다. 여왕이 눈감아주기도 했지만, 필립 공도 국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거든요.


필립 공은 국서가 된 뒤에 해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어요(형식적인 지위죠). 여왕을 호위할 때를 제외하고 의회 출입을 삼가면서 정치적인 개입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걸을 때도 항상 여왕의 세 발짝 뒤에서 걸었어요. 여왕을 대신해 해외를 순방하거나 자선단체에 후원하기도 했는데, 세계 야생동물기금 초대 회장을 비롯해 연을 맺은 단체가 700개를 넘었다고 해요.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는지,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현판 제막 기계"라는 농을 던지기까지 했죠.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출처: 아틀라스)


필립 공은 2010년대에 들면서 건강이 나빠져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2017년 모든 왕실 업무를 내려놓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2021년 4월 9일, 향년 99세의 나이로 별세합니다. 영국인들과 수많은 국가의 정상들의 애도 속에 눈을 감았죠. 사실 필립 공에 대해 좋은 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종차별, 지역주의 발언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죠. 중국에서 공부하는 영국 유학생들에게 "여기 오래 머물면 중국인처럼 눈이 찢어진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에요(너무 많아서 여기 다 쓰기에는 어려울듯합니다). 또한 며느리 다이애나비의 고충을 들어주고 이혼 경력이 있는 메건 마클을 왕자비로 맞이하는 등 다소 개방적인 행실을 보이기도 했어요. 왕실 공무에 바빠서 엘리자베스가 왕실 가족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어서 필립 공이 대신 가족들을 포용하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왕은 군주인 만큼 딱딱하고 엄격한 모습을 보여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인권 의식이 발달하고 있는데 그 추세를 따라가지 못해 망언을 하게 된 것 같아요. 100여 년을 살면서,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했으니까요. 몰락한 왕족으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고, 70여 년 동안 아내의 뒤에서 물러나 걸어야 했던 필립 공이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출처: 아틀라스)



<참고 자료>

내 모든 것을 담고픈, "영국 들여다 보기(15,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통치의 장점)", https://blog.naver.com/jgs0207/221671240511

나무위키, "필립 마운트배튼", https://namu.wiki/w/%ED%95%84%EB%A6%BD%20%EB%A7%88%EC%9A%B4%ED%8A%B8%EB%B0%B0%ED%8A%BC

나무위키,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 https://namu.wiki/w/%EB%B0%94%ED%85%90%EB%B2%A0%EB%A5%B4%ED%81%AC%EC%9D%98%20%EA%B3%B5%EB%85%80%20%EC%95%A8%EB%A6%AC%EC%8A%A4

위키백과,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https://en.wikipedia.org/wiki/Prince_Philip

위키백과, "Prince Andrew of Greece and Denmark", https://en.wikipedia.org/wiki/Prince_Andrew_of_Greece_and_Denmark

네이버 국어사전, "국서", https://ko.dict.naver.com/#/entry/koko/d7e89aa1778a4ca0b8ca7ff640ce05ca

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여왕의 남편", 한국경제, 2021-04-11, A39,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1041106511

Janet Davison,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dead at 99 Social Sharing", CBC News, 2021.04.09, https://www.cbc.ca/news/world/prince-philip-dead-dies-obit-obituary-1.5981009

위키백과, "영연방",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97%B0%EB%B0%A9#%ED%98%84%EC%9E%AC_%ED%9A%8C%EC%9B%90%EA%B5%AD



<사진 출처>

오윤희 특파원, "여왕의 남자", 조선일보, 2015-09-08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08/2015090804018.html

박차영 기자, 英 필립공 별세…엘리자베스 여왕 74년간 외조, 아틀라스, 2021-04-10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0

필립공 젊은 시절 모습 담긴 추모 우표, 뉴시스, 2021-05-1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10495510

필립공의 젊은 시절 모습 담긴 추모 우표(출처: 뉴시스)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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