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고 올게요"
"어디로? 같이 가"
"아니 혼자.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 줘 진짜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맞다. 다신 나를 강제적으로 범하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 카드, 아이리버를 챙겼다.
"제발... 이렇게 나가지 마. 불안해"
"혼자서 걷고 싶어요 정말로... 나야말로 부탁할게."
"7시까지는 와. 저녁 준비해 놓을게"
"네..."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가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손을 풀고 그대로 나왔다.
커피 한 잔 사서 코벤트 가든으로 갔다. 마켓을 돌아다니다 예쁜 장식 소품을 사고 싶어 들어간 가게에서 가레스 게이츠의 "Go your own wa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별노래라니... 헤어지라는 뜻인가..' 울적한 기분 탓인지 자꾸 사소한 것에도 의미부여를 하려는 것 같았다.
떨쳐버리자!
기분을 풀기 위해 와인샵에 가서 그가 평소에 좋아하는 걸로 한 병을 사고 함께 먹을 치즈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가져다 식탁에 두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뭐 하는 거야?"
누구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는 건가? 학교 다닐 때 단체 기합 받을 때 하는 게 무릎 꿇는 거 아니었나? 그의 모습에 겨우 진정시킨 분노가 올라왔다. 그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보기 싫으니까 당장 일어나. 나 기분 풀렸는데 다시 나빠지려고 해"
"아니.. 난 그냥... 너무 미안해서"
"그게 오빠의 사과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다시는 무릎 꿇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시나 하는 말인데 나한테 사과받을 일이 생겼을 때 무릎 꿇는 걸 요구해서도 절대 안 돼"
"그래. 알았어"
싸늘한 나의 말투와 표정 때문인지 그는 잔뜩 기가 죽어있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농담도 건네며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한 후 그는 논문 작성으로 책상에, 나는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일찍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그는 내가 잠들기 전 봤던 모습 그대로 아직 책상에 있었다.
"오빠... 안 잤어요?"
"아니.. 책상에서 잠깐 잤어"
논문 제출을 앞두고 그는 많이 힘들어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공부가 까다롭고 어렵다며, 함께 공부하는 뛰어난 학생들을 보며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고 했었다. 점점 더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그를 보며 나란 존재가 힘이 되어주지는 못 할 망정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8월.. 드디어 그의 논문이 마무리되었다. 중간에 논문 주제가 바뀌게 되어 스트레스도 엄청났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였는데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님도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그는 당분간 공부는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과정을 잘 마무리한 기념으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 오후에 시내에서 산 클림트 그림엽서를 보며 모차르트 초콜릿을 먹고 있는데 그가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9월이면 그의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장거리 연애는 자신이 없다며 결혼을 하자고 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학생비자 소지자라 배우자 비자를 받을 수 있고, 그 비자는 취업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내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서포트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은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우리 엄마 아빠는 안된다고 할 것 같은데요..."
"너 유산 안 했으면 이미 결혼했어 우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너를 혼자 두고 내가 어떻게 한국을 가. 진짜 못 가"
"준비할 것도 많다는데... 안 될 것 같은데..."
"준비할 거 없어. 혼인신고하고 나 비자받으면 런던 다시 와서 우리 살던 대로 계속 살면 돼"
그의 말대로 심플하게 되는 게 결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밤늦게까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하자...' 어차피 이 사람과 할 결혼이라면 더 미루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8월 말에 한국에 같이 들어갔다가 2주 뒤에는 나 혼자 돌아오는 게 계획이었는데 결혼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미리 양가 부모님께 알려드렸다. 상황이 이러해서 혼인신고부터 하고 결혼식은 12월에 해야 할 것 같다고...
예상대로 우리 엄마와 아빠는 반대였다. 집안 상황도 안 좋은데 이렇게 결혼하면 시댁에서 막대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껴안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그의 부모님은 목사님께 인사드릴 날짜와 상견례 날짜를 언제로 잡아야 할지부터 물었다. 그가 부모님께 우리 집 반응을 전달하자 본인들은 믿는 사람이라서 세상적인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으며, 배우자 기도를 이렇게 빨리 응답주실 줄 몰랐다며 마냥 기뻐하셨다.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한국에 들어갔다. 우선 그가 우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반대만 하던 부모님이었지만 차분한 그의 모습이 일단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이틀 뒤 그의 집으로 인사를 갔다. 그의 어머니가 현관에서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셨다.
"우리 며느리 오느라 고생했다"
그의 아버지, 누나 둘, 매형 둘, 그리고 조카 세 명이 다 같이 앉아 감사기도를 올린 후 식사를 시작했다.
"산이(그의 이름 마지막 글자) 피부도 엄청 하얗다고 생각했는데, 더 하얗네?"
"둘이 되게 닮았다. 잘 어울려. 닮은 사람끼리 결혼하면 잘 산대"
나를 보기 전부터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어 했던 그의 가족들은 직접 보니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100% 확신하지 못했던 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른 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다음 날은 그의 가족들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기로 한 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목사님이 보수적인 분이시니 머리를 단정히 묶고, 흰색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올 것을 주문하셨다.
말씀하신 것처럼 차려입고 예약된 식당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가 미리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얘, 목사님이 조금 이해 안 가는 소리 하셔도 가만히 있어.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고.. 알았지?"
"네"
식당 룸으로 들어가서 앉아있으니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들이자 그 교회의 부목사님이 들어오셨다.
풍채가 좋으신 목사님은 나를 보더니 "승무원이나 아나운서 같은 이미지네. 내가 먼저 봤으면 내 며느리 하자고 했겠어요. 예쁘네" 하며 본인 아들을 한 번 쳐다봤다.
"목사님께서 우리 산이 여자친구 생긴 것 같다고 알려주셨잖아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이라고 하셔가지고 그때부터 얼마나 감사 기도를 드렸는지 몰라요" 그의 어머니가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불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목사님이 나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가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나도 그대로 따라 앉았다.
목사님은 우리 두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로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뜨니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멘,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낯선 광경이지만 그렇다고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상견례도 하기 전인데 결혼은 확정 된 분위기였다.
그 주말 상견례 자리가 마련되었다. 형제, 자매 없이 부모님과 당사자들만 만나기로 했다.
식사장소는 꼼꼼한 그가 위치, 분위기, 음식의 맛 등을 알아보고 정했다.
"귀하고 예쁜 딸을 우리 가족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들 통해서 들으셨겠지만 저희는 기독교 가정입니다. 믿는 가정이 아니라고 해서 잠깐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도 저희에겐 축복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세상적인 시선으로 판단하지 않으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는 그의 어머니 말씀이 점점 거슬렸는지 대꾸하셨다.
"저도 행정고시 합격해서 지금껏 공무원 생활하고, 이 사람도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했습니다. 최근 몇 년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있었고, 그래서 우리 딸을 이전처럼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누군가에게 부담 가지면서 부끄러운 결혼식 시킬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얼마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는 사실 산이 결혼 비용으로 2억 정도는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빠가 잠잠히 있다가 나에게 물었다.
"너 3년 학비로 1억을 주는 게 좋니 아니면 결혼 비용으로 1억 받는 게 좋니? 너한테 뭐가 나아?"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섣불리 대답할 수 있을까...
마주 앉은 그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 학비는 제가 책임지기로 이미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결혼비용도 마찬가지로 서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어요. 런던 가면 살던 집으로 그대로 들어가서 이전처럼 일하고 공부하면서 살면 됩니다."
분위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자 그의 어머니는 당황하신 듯했다.
우리 부모님이 그의 가족들에게 절절매며 굽신거리기를 바랐던 것이란 건 몇 달 뒤 결혼식을 마치고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