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몇 년에 한 번씩 재산이 ‘0’으로 리셋되는 사이클이 찾아온다.
이혼 전, 전남편의 대표병과 사업병으로 인해 영국에서 모아 온 10억이 넘는 돈이 사라졌다.
이혼 후에는 남들보다 조금 높은 연봉으로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통장에 돈이 쌓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암 투병이 시작됐다. 표적 항암치료로 들어간 1억 3천만 원, 퇴직금까지 미리 받아 충당하며 버텼다.
그리고 또 조금 모였다 싶었던 지난 해, 이번엔 내가 암에 걸렸다. 6개월 병가를 내고 복직할 때쯤, 통장은 또다시 바닥이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세상에 나처럼 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싶었다.
꼴통들만 모아 놓은 반에서 꼴찌, 못생긴 아이들 중 제일 못생긴 애, 불행한 사람들 중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세상이 나를 콕 집어 지목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멘탈을 붙잡기 위해 애를 썼고, 치료를 다 마치자 가장 소중한 것들이 나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는것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복직 후에는 다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고3 아이의 입시 스트레스, 열 살이 넘은 노견의 잦은 병치레를 보며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일이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삼성동까지의 출퇴근길은 매일 점점 더 힘들게 느껴졌고, ‘지금 아니면 평생 못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지자 10월 초 사직서를 냈다.
회사에서는 붙잡았다. 업무 불만도 아니고 다른 회사로의 이직도 아니라고 하니 더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결국 11월 말까지만 근무하기로 합의를 했다.
아..그리고 잔고는 이번에 아이가 해외 대학에 합격하여,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몇 천만원이 한 번에 빠져나가 통장이 또 텅~장이 되었다.
마흔 중반에 서울은 커녕 어느 지역에도 자가 없는 외국계 기업 O부장... 그게 나다.
그리고 다음달이면 외국계 기업 부장 타이틀도 사라진다.
즉, 12월이면 개뿔도 없는 마흔중반의 여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 이미 ‘잔고 제로’의 재정 리셋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걸 안다.
- 가진 게 없으니 뭐든 열심히 할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 아파봤기에 건강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 아이가 출국하기 전까지 함께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
-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우리집 노견과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번 주 출장을 마치고 다음주에 사무실에 돌아가면 팀원들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돌아가며 점심을 먹고, 저녁 회식도 하며 작별할 준비를 하게 될 텐데 벌써 조금은 먹먹하고 또 조금은 설렌다.
사무실 라운지에서 바라보던 한강, 뒷편으로 보이던 봉은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보낸 9년의 직장 생활. 이제 그 시간을 잘 마무리하려 한다.
12월부터 백수는 아니고 몇 년 전 법인 하나를 설립해서 부업처럼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브랜드 사업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직장 생활에서 한 번 머리 숙일 일이 있다면, 회사 밖에서는 열 번 더 숙이고, 열 번은 더 허리 굽혀야 한다”고.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내 처지가 용기이고 의지가 될 것이라 믿기에 가보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저의 20대 30대 삶의 이야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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