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도 전염된다. 러닝하며 만난 세상을 위한 배려들
달리다가 길 위에서 만난 생각들
평소에 하지 못하던 생각을
‘러닝 하면서 반짝' 하게 될 때가 있다.
마치 계시라도 받는 듯이.
오늘이 그랬다.
아이들 둘 다 도시락 싸서 학교에 보내고,
바로 뛰러 나간다. 옷 갈아입으러 들어왔지만,
눈에 밟히는 것들이 많다. 키친 정리를 시작할 뻔했다.
안 돼, 이렇게 주의가 분산되면 오늘 운동은 또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눈 꾹 감고 몸을 옮겨
운동화를 신는다. 끈을 묶으며 오늘은
10킬로를 채우자는 다짐을 해 본다.
막상 뛰어보면 느낌이 다를 때가 있다.
마음은 날아가는데, 몸이 천근만근인 날이 있다.
반대로 마음이 찌뿌둥했지만 몸만큼은 가벼운 날도
있다. 다행히 오늘은 충분히 뛰어보자고
마음먹은 대로 컨디션이 따라 준다.
항상 5킬로를 넘고 나면 잠시
고민이 된다. 하루분량은 충분히 뛰었는데,
그만 돌아가자. 집에 할거 많잖아.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려면 한 시간밖에 안되는데,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할 것들 다 하고 갈 수 있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한번 더 돌아
뛴다. 됐다. 이 고비만 넘기면 10K 거뜬히 해 낸다.
조금 힘든 듯했지만 6K 구간을 지나며 머리가
더 맑아지면서 아이디어가 막 떠오른다.
주일에 교회 청년 하나가 예쁜 쪽지와 여러 물건들이든
지퍼백을 가지고 왔다. Homeless pack이라고 한다.
에너지바, 칫솔, 치약, 물티슈, 타겟 기프트카드.
쪽지에는 후원계좌 정보가 있다.
앞으로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싶어서
후원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막 대학
졸업하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미국은 홈리스가 참 많다. 운전하다 신호에 걸려
차를 잠시 세우게 되면 구걸을 하는 노숙자들이
다가온 적이 많다. 홈리스를 마주할 때면
위선자 같은 내 모습에 괴로워하는 자아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조금의 도움을 주고
어떤 죄책감 같은 걸 벗어나려는 자아가 투닥된다.
현금을 가지고 있을 때는 5불, 10불 정도의
돈을 주기도 한다. 어떤 날은 현금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또는 그들이 술이나 마약을
구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와주지 못하는 날도 있다.
미국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카고 다운타운에
간 적이 있다. 삐쩍 마른 홈리스 할아버지가 팔에 피를
흘리며 번쩍번쩍한 건물에 기대어 있는 걸 보았다.
눈에는 초점이 없고 삶을 포기한 듯 보였다.
화려한 도시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목적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5초 정도
눈을 떼지 못했지만 결국 그냥 지나쳤다.
그는 구걸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냥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듯이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었다. 그 누구도 홈리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그 후로 자주 생각이 났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분 닮은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데, 내가 정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맞나?
스스로에게 그런 종류의 실망을 할 때마다,
그 장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물론 내가 내 가진 것 다 끌어다 그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어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걸 안다.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심하게 복잡한
일이다. 쉽게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그것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 봐야,
바위에 계란 치기밖에 안 될 거다. 그렇다고
그런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건 위선이다.
내가 어릴 적 우리 동네 번화가에도 홈리스가 있었다.
미국의 홈리스들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앉은뱅이로 불렸던
그분은 다리가 불편한 듯, 바닥에 앉은 채 하체를
질질 끌고 다녔다. 바구니를 놓은 상자 안에서는
복음성가가 흘러나왔다. 그걸 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다.
아주 어릴 때 그분의 처음 봤을 땐 너무 놀랐다.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 그냥 지나치기 미안했다.
몇 년째 같은 자리에서 구걸을 하는 그 아저씨가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소문을 들었다.
어떤 아이가 어른들한테 들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저 아저씨 그냥 불쌍한 척해서 돈만 모아 가는 거래.
저렇게 돈 받아다가 집에 갈 때는
멀쩡하게 일어나서 걷는대. 차도 그랜저래.
그래서 저런 사람은 도와주면 안 된대. “
그렇게 어른들에게 교육받은 친구의
말을 듣고는 혼란스러웠다.
저렇게 불쌍해 보이는 아저씨가 정말 사기꾼인 걸까?
그렇게 모은 돈으로 떵떵거리면서 산다는 게 진짜일까?
교회 헌금하는 것처럼, 겨울에 구세군 바구니에 기부를
하는 것처럼, 가끔은 그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마음이 놓였던 나는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돈을 주면 안 되는 건가?
나보다 더 잘 사는 아저씨한테 주게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이 시작되면서 내 손에 있는 돈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것에 주저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거지”들이
더 많았다. 이름도 좀 더 세련된 것 같다. 홈리스.
여기서 그들 에 대한 루머는 이렇다. 저 사람들은 삶의
낙이 없어서 돈이 생기는 대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한다. 그러니까 절대로 돈은 주면 안 된다. 도와줄 거면
차라리 먹을 걸주라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만났을 때 그 순간 내 손에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내가 음식을 주었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거라면?
홈리스는 그런 것도 가리면 안 되나?
그 사람들도 본인만의 취향 이 있을 텐데…
아무튼 그런 고민들 때문에, 내 작은 선행 지체 되었다.
시카고에서 팔에 피 흘리던 노숙자를 만난 지
3년 정도 후에 일이다. 먼 길을 가는 중에 조금
큰 도시 다운타운에 내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빼빼 마른 노숙자 할머니를
만났다. 미국은 다운타운에 홈리스가 많다. 이제 큰
도시에서 보는 홈리스들은 많이 익숙해졌다.
할머니가 배고픈데 먹을 게 없다며 돈을 좀 달라
그랬다. 남편이 주머니에 있던 돈을 주섬주섬 꺼내
주었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가 조금 취해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저 할머니 또 아침부터 술 더 먹으면
어떻게 해 걱정이 되었다. 괜히 우리가 돈을 주어서
술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가 아침에 먹고 다시 차를 타러 돌아오는 길에 그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샌드위치 가게 Subway®
에서 봉지를 하나 들고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준 그
돈으로 바로 사온 귀한 음식인 것 같았다. 너무너무
죄송했다. 진짜 배가 고팠던 할머니를 의심한 게
미안했다. 그간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편안해야 할 노후에 그런 모습을 가진 그분이
애처로웠다. 젊은 외국인들에게 구걸을
해야 했던 미국 할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경험 이후에는 의심보다는 좀 더 순수해지기로
했다. 진짜 배고파서 속이 쓰린데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을까. 그래서 가능할 땐
도와주고 싶은데 문제는, 이제 현금을 거의 들고
다니 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다운타운이 아주 멀다. 교외 지역에 살아서 홈리스를
거의 만나지 못하니까 생각도 많이 안 하게 된다.
어쩌 다 한 번씩 다운타운 쪽으로 가면 새삼
놀라게 된다. 맞아, 미국에는 홈리스가 참 많지.
일요일에 저 홈리스 키트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나도 비슷한 걸 해야 되겠다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냥 좋은 일 하는 청년한테 후원이나
조금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그런데 오늘 뛰다 보니까 맞네, 그건 나도
하면 되는데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달리는 길 위에서 세상을 향한 배려를 만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선행덕에
나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선행도 전염되나 보다.
(“습관은 전염된다” 라는
저의 이전글을 추천합니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때라 간식을 이것저것 챙겨 다닌다.
특히 차로 이동이 많은 플로리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차에는 항상 건강한 간식이 비치되어 있다.
신선한 과일 야채는 얼마 못 가니, 주로
프로틴바나 요기, 두유, 구운 칩 등이 있다.
그동안 홈리스에게 돈 말고 먹을 것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자주 있었다.
생각만 했지 실행에 옮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음식을 언제 홈리스 만날 줄 알고 항상 준비해
다니냐는 핑계가 있었다. 아이들은 위한 간식은
상비약처럼 항상 차에 대기하고 있다.
아이들 간식처럼 항상 들고 다니면 되겠구나!
지퍼팩 세 개에 건강하고 든든한 간식을 넉넉하게
나누어 담았다. 근육 키워보겠다고 쟁여 놓았던
프로틴 바도 아까워하지 않고 담는다.
우리가 먹는 두유는 뭔지 잘 모를 테니
잘 알 만한 이온음료, 게토레이을 넣는다.
그들의 마른 목을 축여 주겠지.
나는 아까워서 잘 손대지 않던 유산균 스낵 ‘요기’도
담았다. 마지막으로 물티슈도 담는다.
이 간식 몇 개로 세상의 약자들에게 빚진 마음을
다 씻어낼 생각은 없다.
단지, 하루치의 행복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 행위를 통해 나도 오늘 하루 좋은 일 했다는
뿌듯함 정도 가지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