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며, 경계인의 경계 허물기
내향적인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면 혼자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좁아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즘 내 마음이 그냥 막 넓어질 때는 달릴 때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뛴다. 반년 정도된 습관이다.
뛰는 게 이렇게 좋은데,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아쉬울 따름이다. 달릴 때는 마음이 확 넓어진다.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단단해진 체력이 남는다.
몸이 좋아지니, 마음도 따라 더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달리기에 관한 저의 이전 글*을 추천 합니다)
러닝을 하면서 현재를 만끽하는 걸 배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뛰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나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나는 경계인이다.
한국 떠난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장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그곳.
한국을 참 그리워한다. 항상.
가족이 그립고,
음식이 그립고,
내 나라, 내 말이 그립다.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그곳에
원래 있는 주인이라는 느낌은,
멀리 떠나 살아보지 않은 사람을 잘 모를 테다.
내가 그랬다. 손님이, 경계인이 되어보기
전에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으니까.
항상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지만 쉽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는 못 한다. 이제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자녀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역이민 바람이 불면서는 나도 아이들
대학 가고 나면 한국에 가서 적어도
5년은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처럼 미국에 몇 년 살고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가 그냥 이곳에 자리
잡고 살게 된 가정을 많이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선택들 중에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다들 여기에 남게 되었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며 남은 미련을
한 번씩 꺼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특히 이민자로 살면서 사소한 서러운 일들이 쌓일 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당장 쉽게 해결할 수 없을 때.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답답할 때. 기본 언어
장벽 외에도 문화 장벽까지 결국 넘어서기 힘들 때,
한국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국에서 추석이라고 설이라고 가족들이 다 모인 걸
봤을 때. 맛있고 저렴한 먹을 곳 많은 한국을 떠올릴 때.
무엇이든 정확하고 빠른 서비스의 쾌적함이 떠오를 때.
무엇보다 병원 다녀올 때마다,
한국이 정말 심하게 그립다.
그런 한국에 오랜만에 방문할 때에,
역설적으로 생소한 감정을 맞닥뜨린다.
과연 내가 다시 한국에서 산다고 해서
허전한 느낌이 전부 다 채워질 수 있을까? 하는.
그리고 돌아보면 여기서 경계인으로 사는 듯 하지만
누리는 것도 많다. 좋은 공기와 자연에 더 밀접한 생활.
비교적 덜 경쟁적인 사회. 타인의 눈에 간섭을 덜 받는
문화,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들.
우리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시키고
한국에 돌아가서 살게 될 날이 있을까?
만약에 그런다면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 살아온 지
20년이 넘게 흐른 후이다. 이미 강산도 두 번이나
더 바뀌었을 그때, 내가 과연 거기에서는
더 이상 경계인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한국에 가면 또 경계인이 될 것을 안다.
이미, 너무 오래 떠나 있었으니까
역이민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한국에 돌아가서 살면 이곳에서 살 때 누렸던
이점을 생각하며 또 많이 그리워할 테지.
나처럼 한국 떠난 지 십 년이 넘었는데, 항상 한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에서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역이민을 꿈꾸다가도
금세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런 우리를 스스로
'어중이떠중이'라 부르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면 아 내가 또 부정적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어디든 단점이 있듯이 장점이 있다.
여기의 장점이 한국에 단점이 될 테고, 반대로
여기에 단점은 한국의 장점이 될 터이다.
그렇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곳에서 장점만 바라볼 거냐,
그곳의 장점만 그리워할 거냐.
후자가 될 경우 어딜 가나 항상 불만 투성이인,
투덜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가는 곳마다
좋은 것만 보고 아쉬운 건 그냥 넘길 수도 있다.
그래 그건 내 선택의 문제였다.
이런 생각 끝에 만난 결론은
명백하고 분명한 감사이다. 그리고는
아쉬운 것에 미련을 덜 가지려고 노력한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잖아 위로하면서.
이게 내가 달리면서 경계인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다.
*달리기, 계속되는 홀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