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만난 "아, 사랑의 죄인 들이여"
최근에 "이로"에 푹 빠졌다. 유튜브에 나오는 아가*다.
요즘 남편이랑 나는 이로를
마치 우리 셋째 처럼 예뻐한다.
둘이 산책을 하며 이로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이로를 보고 있으면
우리 딸 어릴 때를 보는 것 같다.
물론 그녀의 눈부신 외모는
자기 엄마한테 물려받은 듯하고,
내 것이랑은 결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나를 닮은 우리 딸은 그녀와 말투가 비슷하다는 것,
그뿐이다. 단지 말투만. 그것도 벌써 12년 전의 우리 딸.
인형 같이 생긴 아가가 말을 그렇게 잘하니까
넋을 놓고 보게 된다. 도파민을 뿜뿜 선물해 주는
짧은 쇼츠라서 더 정신을 못 차리며 본다.
보다 보면 처음에는 이로의 외모에 사로잡히고,
곧 이로의 말투와 애교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요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로 쇼츠를 보고 또 본다.
반복해서 보니 나를 사로잡는 게 하나 더 있다.
이제는 사실 그 부분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
바로, 이로 엄마의 웃음소리
이로가 이야기하고 나면 엄마가 한참을 웃는다.
웃음이 참 많다. 저런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매 순간
듣고 자란 아이라서 저렇게 밝고 사랑스러운가 보다.
한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전업맘으로 최선을 다 한 건
맞다. 모유 수유를 했으며, 분유 없이 완모를 각각
14개월씩 했다. 이유식은 거의 다 만들어 먹였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대개 그렇듯 배달음식이 없으니
(15년 전에는 우버이츠도 도어대시도 일절 없었다)
전부 다 만들어 먹었다. 큰 한인 마트가
생활권으로 들어온 건 불과 2년 전이다.
육아의 매 단계 완수해야 할 것들을 성실히 이행하느라
너무 바빴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놀아주며
책 읽어 주는 건 기본이었다. 육아와 동시에
새로운 나라에 정착도 해야 했다.
아이들 자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를 해서 석사를
시작했다. 석사를 끝내고 직업까지 갖겠다는 욕심이
더해졌다. 당연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되돌아보니
산후 우울증도 약간 있었다. 그러니
중요한 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 입가에 웃음기와 끊임없는 웃음소리.
내가 석사를 두 학기 만에, 중간에 포기했지만
아직 대학교 가족 기숙사에 살 때
우리 집에 작은 언니가 놀러 왔다.
한 달간 놀러 왔던 언니의 말을 빌리면,
내가 거의 웃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 그때에 나는 삶이 힘들었다.
감당 안 되는 영어로 하던 석자를 그만두니 홀가분
하긴 했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미련은 어쩌나.
그때는 육아와 내 삶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정리가 다 안 됐을 때다.
내가 잘 웃지를 않는다는 말을 의식해서
그 후에는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해 왔다.
세 딸 중 막내로 자랐지만 원래 애교 같은 건 없다.
여우짓 같은 것도 거리가 멀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항상 엄마가 칭찬해 주시던 한 가지가 있었다.
아주 잘 웃는다고. 눈 마주칠 때마다 생글생글
웃는다고. 그래 그런 나였었는데…
물론 우리 영상 속에 행복한 순간들에 나는 웃고 있다.
내 웃음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이로 엄마의 웃음소리,
이로가 말하고 나면 항상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웃어주는 그런 소리를
더 많이 들려주지 못해 우리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조금이라도 더 웃어줄걸 아쉬운 마음이 크다.
남편한테 나의 이런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남편이 내가 몇 년 전에 한 말을 상기시킨다.
아이들한테 충분히 노력해서 최선을 다했으면,
절대로 습관적으로 미안해하지 않기
아뿔싸, 내가 그랬었다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더랬다.
내가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우리 엄마는 한때 자주 나에게 더 해 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난 엄마가 최선을 다한 걸 알고
상황도 아니까 너무너무 감사할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는 살면서 만난 한국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미안해한다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나에게 무엇을
주면서 더 좋은 것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아니, 주시면서 왜 그러 시는 건지? 그런데 그냥
말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한 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신 분들을 여럿 만났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한국 아줌마들이 유독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전혀 미안해할 상황이 아닌데, 오히려
조금은 생색을 내도 될 것 같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절대로.
근데 지금 이 엄마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아이들한테
미안해진 걸 보니 또 다른 깨달음도 온다.
아 사랑해서 그랬구나. 너무 사랑하니 그냥 항상
무엇이든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러셨던 거구나.
사춘기 딸 아들의 키우면서는 자주 아이들의 기분을
살핀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무엇을 권해야 할지, 말을
아껴야 할지, 훈계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눈치 보는 생활이 이어지자, 남편과 나 사이에
동지애가 무럭무럭 자라나 더 끈끈해지고 있다.
산책할 때마다 서로의 모험담을 공유한다.
"내가 오늘 아침에 딸 기분이 좋아 보이길래,
허그해 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바로 뒤돌아서서
문 닫고 들어갔가더라ㅋㅋㅋㅋ"
아침부터 안아 달라고 했으면 당신이 무리했네,
토를 달면서 나도 질세라 하나를 꺼낸다.
"나 아까 아들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괜히 썸 타는 애
이름 꺼내서 조금 놀리려고 하다가 오는 내내
분위기 싸하게 왔잖아. 얼어 죽는 줄.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 보고 살아야 돼?"
이런 모험담을 나누는 게 요즘 남편과 나의
소소한 재미다. 그러면서 서로를 보고 위로한다.
아, 사랑의 죄인들이여.
Main photo by Eric Ward on Unsplash
*한번 보면 빠져나오지 못할 이로의 쇼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