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또 자녀 생각. 크로스 컨츄리 달리기와 마칭 밴드
날이 선선해졌다.
남편이랑 함께 걷는다.
오늘도 걸으며 우린 자축한다.
하루를 잘 살아낸 우리를 칭찬해.
러닝 초보와 러닝 초초보가
보잘것없는 마일리지와 기록을 내세우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노라고 자랑질이다.
서로 질세라 자랑을 이어간다.
누가 들을까 벌써 부끄럽다.
요즘 우리 부부의 가장 큰 화두는 러닝이다.
내가 5개월 정도 매일 뛰는 걸 보더니,
남편도 따라 뛰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되었나 보다.
역시 습관은 전염된다 (예전글 깨알 홍보)
우리에게 변함없는 단골 주제도 있다.
바로 아이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그쪽으로 수렴하는 깔때기이다. 딸 아들의
어제오늘 근황을 빠뜨릴 수 없다.
(혹시 저의 교육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여기)
아들이 요즘 학교에서 크로스 컨츄리 달리기를 한다.
지금 가을 시즌 스포츠로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연습하고 토요일이면 대회를 나간다.
3킬로를 뛰는데, 우리랑 다르게 빠르다.
역시 젊은것들을 따라 잡기는 힘들다.
순리를 인정해야 한다.
크로스컨트리 달리기는 장거리 러닝이다.
단교경주라고도 한다. 코스는 들이나 초원 등이
보통이며 간혹 경작지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도로는 피하여야 한다. 출처:위키백과
아들이 달리기를 즐기는 걸 보며 남편이 부러워한다.
우리도 저 나이 때 저런 즐거움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진심으로 동의한다.
내가 20대 때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평생 습관으로
만들었더라면, 삶이 전체적으로 더 활기찼을 것 같다.
아들이 10대 초반에 벌써 그 즐거움을 알아가니
감사할 뿐이다.
남편은 달리기를 "벌"로 인식해왔다고 한다.
지각하면 운동장 세 바퀴, 야간 자율학습
빼먹은 거 걸리면 운동장 스무 바퀴,
어느 날은 별 잘못이 없었지만, 그 선생의
기분에 따라 운동장 몇 바퀴를 돌기도 했었다고.
그 이유로 최근에도 달리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가벼이 시작하기 힘들었다고. 그 체벌 문화 때문에
러닝 시작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었노라고.
그 선생님의 깊은 뜻 속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라는
바람이 함께 든 것이었을까? 정말 그렇다면, 그 깊은
뜻을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아무튼 그렇게
자라 온 남자 고등학생들은 다 커서도 러닝을 즐기기
까지는 심리적으로 극복해야 할 게 많은 것 같다.
물론 이제 그런 ‘운동장 뺑뺑이’ 이야기는 옛말일 테지.
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계속 걸으며 이번에는 남편에게 딸 학교에
마칭 밴드 구경 갔다 온 얘기를 해준다.
남편은 바빠서 못 가고 나 혼자 갔다.
엄청난 새로운 걸 발견한 듯 남편에게 자랑을 한다.
지난주 금요일 딸 고등학교에서 하는
마칭 밴드를 보러 학교 풋볼 경기에 갔다.
밴드 보러 왜 미식축구 경기에?
우리 딸은 풋볼 팀은 아니지만
매주 풋볼 경기에 꼭 참여한다.
아이가 속해있는 마칭 밴드가 그곳에서
공연과 응원을 하기 때문이다. 슈퍼볼 경기 때
유명한 가수들이 하프타임 쇼를 하는 것처럼,
마칭밴드는 매 경기 하프타임 때 공연을 한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큰 쇼 중에 하나이다. 매년 2월 둘째 주 일요일에
미식축구 NFL 결승전인 슈퍼볼 경기에 2 쿼터가
끝나고 이후 쉬는 시간에 선보인다. 그 무렵 가장
잘 나가는 슈퍼스타들이 공연을 한다.
단독 공연을 했던 가수로는 마이클 잭슨,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즈, 프린스, 다이애나 로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 레이디가가 등이
있다. 콜드플레이, 부르노 마스, 에미넴,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티비 원더, 어셔,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은 합동 공연을 했다.
처음에는 마칭 밴드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좀 서운했다.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데,
우리 딸의 마칭 밴드는 풋볼 게임을 응원만 하는
만년 조연인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치어팀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딸 중학교의 치어팀은 농구 경기를
따라다니며 응원했다. 농구경기가
취소되면 치어팀도 자동으로 취소된다다.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 같아서
좀 씁쓸한 기분까지 들었다.
경기를 보러 가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필드에서는 풋볼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그 경기를 응원하며
마흔 명이 넘어 보이는 치어팀과
백 명이 넘는 마칭밴드가
그 경기 분위기를 뜨겁게 다루고 있었다.
마칭밴드, 치어팀, 풋볼팀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각각 자기만의 퍼포먼스와
경기를 선보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경기에만 집중하면 밴드나 치어팀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놓치기 쉬웠다.
하지만 밴드나 치어리더들에게 눈길을 두다 보면
경기는 뒷전이 되었다.
밴드는 밴드대로 공연하며 놀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치어리더들도 마찬가지이다.
스턴트 치어리딩을 제대로 선보인다.
남학생 베이스 한 명이 여학생 플라이어를 토스하고
다시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려 받쳐드는 것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여학생 세 명이 베이스가 되어
다른 여학생 플라이어 한 명을 들어 올려 받치며
협동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뭉클해지기도 한다.
물론 중간중간 연결점이 있기는 했다.
풋볼 팀이 터치 다운을 하면 곧바로
밴드는 짜릿한 음악을 선보이고,
동시에 치어팀은 그쪽으로
모두 뛰어가서 응원을 제대로 한다.
어쨌건 내가 받은 인상은 프로팀처럼
정말 풋볼 경기만을 위해서 응원하기보다는,
세 개의 팀이 한 공간에서 본인들이 각각 준비해 온
것들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채로.
각자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수련해 갈 수 있는 기회가
공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
아이들이 뒤집고, 배밀이하고, 기고, 걷고,
단어를 말하고, 문장을 말하고
어떤 한 단계 성취하는 것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그걸 신기해하며 공유해 왔다.
비디오와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그걸 함께 돌려보았다.
이제 아가 때만큼 사진을 남기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랑 남편이랑 둘이 있을 때,
아이들 이야기로 다시 웃음꽃을 피운다.
가령, 새로 발견한 아이들은 습성에 대해서,
딸 아들이 전해준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을 때,
이제 풋풋하게 시작하는 아이들 연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등등. 그러다가 종종 현타가 올 때가 있다.
현실 자각 타임.
아이들 얘기로 행복해하던 둘이 눈을 마주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남편이, "딸 아들은 우리가 자기네 없을 때도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알까?"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알겠어, 자기네도 지들 자식
낳아보면 알겠지. 우리는 알았나, 뭐."
그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도 하니.
내리사랑 만으로도 즐겁다.
매 순간 함께 나눌 남편이 있어 감사하다.
우린 이걸로 행복하니 됐다. 니들 키우면서
이런 소소한 행복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교육에서 지원하는
딸아이 학교에 있는 풋볼 경기장이나
여러 스포츠팀 클럽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인다.
미국 교육이 여러 OECD 국가에 비해 질이 낮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서 라는 루머를 들은 적도 있다.
루머라는 게 원래 그렇듯,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실 미국은 어느 국가 못지 않게
교육에 돈을 많이 들인다. 단지 교육의
"어떤"부분에 돈을 많이 들이는지가 다를 뿐이다.
미국은 교육비 지출이 교사 인건비보다는
건물 설립과 유지비, 스포츠에 관련한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미국은 스포츠에 심하게 진심이다.
큰 공립 고등학교는 대부분 수영장과 체육관,
풋볼 경기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설에
엄청난 돈이 드는 게 현실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크지만, 어떤 고등학교의 잘 나가는
스포츠팀 코치는 교장보다 연봉이 높다고 한다.
고등학교에는 웬만한 스포츠 클럽이 다 있다.
학생수가 2천6백 명 정도인 딸의 고등학교에는
시즌별로 운영되는 스포츠가 많이 있다.
가을에는 배구, 미식축구 (풋볼), 수영, 골프,
크로스 컨츄리 달리기. 겨울에는 농구, 축구, 레슬링.
봄에는 야구, 플래그 풋볼, 소프트볼, 테니스,
육상 (트랙 & 필드).
우리 딸아이 학교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천명이 넘는 학생이 다니는 공립학교에는
보통 비슷한 규모로 운동 팀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운동에 미친 나라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학교 공부하랴 숙제하랴
마칭밴드하랴 크로스컨트리하랴... 또 학교 밖에서도
오케스트라 하랴 수영하랴 고생이 많다.
필요한 라이드를 하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끼니마다 건강히 먹이고
중간중간 간식까지 챙기는 나도 고생이 참 많다.
딸 아들 덕분에 운전을 하고 또 한다.
밴드는 화요일, 목요일 4pm-7pm 연습을 하고,
금요일마다 방과 후에 남는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1시가 훌쩍 넘는다.
늦는 날은 12시가 넘을 때도 있다.
월요일은 딸 아들 둘 다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참석하고
아들은 수영 연습을 일주일에 네 번은 가야 한다.
중간중간 놀기도 해야 하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이리 키워서 뭐하나 하는 생각ㅋㅋㅋㅋㅋ)
하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건
그냥 서포트해 준다.
남편도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하다가
한 번씩 아이들 라이드 해주느라 고생이 많다.
미국이 한국보다 전반적으로 경쟁이 덜 한 것 같아
보이나, 사실 여기도 열심히 하는 애들은 인종 초월
정말 열심히 시킨다. 과목별로 모두 과외를 하는
집도 있고 기본 공부 외에도 악기나 운동을 또 하나의
과목처럼 거의 목숨 걸고 하는 친구들도 많다.
넘사벽, 그들이 사는 세상.
그런 정보를 들으면 가끔 또 흔들리기도 한다.
아이들 연습 더 시켜야 하나?
좀 더 좋은 성과 낼 수 있게 강요해야 하나?
대회도 나가야 할까? 이제는
더 흔들리지 않으려고 중심 잡는 중이다.
탑 대학 가는 게 목표도 아니고,
좋은 직장 잡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다.
아이들이 인생 단계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교육의 목표다.
성실히 맡은 거 해내고, 그 과정 중에 만난
친구들이랑 우정 쌓아가며
그냥 하루하루 만족할 수 있으면 된 거다.
저의 자녀교육에 관한 브런치북을 추천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is-your-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