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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멀어진 절친을 위한 음식도 같이 사면서

딸 고등학교 주차장에서 올려드리는 기도

by 여행하듯 살고

한때 둘도 없이 잘 지내다가 요즘 소원해진 친구와

함께, 딸이 곧 내 차에 탈거다. 둘 관계가

밋밋해진 지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카풀은 계속 유지 중이다.

부모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뭐 아이들도 크게 싸운 건 아니라 괜찮다.

그다지 껄끄러운 건 아닌데 전과 사뭇 다를 뿐이다.

특히 우리 딸한테 앙금이 남은 것 같다.


만 열네 살 아이는 이제 어른들처럼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한다.

예전처럼 웃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내 차에 계속 태워 다니면서도

둘이 전처럼 잘 놀길래 몰랐다.

딸아이가 속내를 알려주기 전에는.


어딜 가나 남자 여자에게 다 인기 많아 보이는

그 베프는 아무렇지 않게 우리 딸에게 상처를 주었고,

우리 딸은 자기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했다.

그걸 알게 된 나는 속상했지만 학교가 너무 멀기

때문에, 둘이서 하던 밴드 카풀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사실 전에 친할 때에도 내가 좀 느끼던 바는,

우리 딸은 그 아이를 가장 친한 절친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는 우리 딸을 여러

친구 중 하나로 생각 하는 거 같았다.

뭐 인간관계야 그런 일이 허다하고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고

앞으로 또 겪을지도 모르니 괜찮다.


그런데 그냥 세상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 났으면 하는 우리 딸이

을이 된 거 같은 느낌에 내가 속상할 뿐이다.

그럴 때 아이보다 내가 더 속상한 듯하다.


딸이 서로를 더 존중하고 성숙한 우정을 키워갈

다른 좋은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이 친구와도 다시 잘 지내면 좋겠다.

나도 이 친구를 참 이뻐했다.

내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댕댕이 같이 귀엽고 무던하다.

뭐, 우리 딸 말 들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그런데 한번 설정된 관계도를

바꾸기가 싶지 않은 걸 잘 안다.

그래서 난 우리 딸한테 좀 더 잘 맞고

마음 왕래가 비슷한 그런, 더 좋은

베스트 프렌드가 생기면 좋겠다.


아무튼 딸이랑 슬립오버도 많이 하고 자주 놀았던

그 친구를, 요즘 나는 그냥 사무적으로 대한다.

내 음식을 특히 좋아하는 그 파키스탄 아이에게

아직도 저녁 시간에 픽업을 할 때면 나는

떡볶이를 만들어 오기도 하고, 그 아이의

최애 삼각김밥 참치마요를 만들어 오기도 한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오는 길에 샌드위치를 샀다.

싸지도 않다. 딸과 그 친구 취향에 맞게

재료를 하나하나 골라 따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와

주차장에서 아이들 기다리며 풀어놓는데

조금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딸이랑 아주 잘 지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많이 주었고, 더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관계 금이 가기 시작하고 히스토리를 아니까

그냥 간식을 들고 오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그 집이 아이들을 픽업할 때는 음식을 들고 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으니 더 고민되었다.


그런데 픽업시간은 저녁 6시 40분.

우리 딸 배고플 걸 생각하면 바로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맛난 냄새 풍기며 우리 딸만 먹일 수 없다

미국정서로는 괜찮을지 모르나, 내가 안 되겠다.

그럴 순 없다. 그럼 같이 먹여야지 어쩌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서 학교로 오는 길,

석양을 등지고 운전하는 길이 눈 부시게 예뻤다.

상쾌해진 가을바람이랑 몽글몽글 구름을

떠올리니, 덕분에 내 마음도 넓어진다.

주황빛 석양은 꺼져가면서 내게

넉넉한 마음을 선물하는 듯하다.

방금 아깝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이 참 좁았네,

부끄러워졌다. 반성하며 기도를 올려 드린다.




하나님 지금 딸의 친구에게 음식을 나눕니다.

이 음식 먹고 우리 딸과 이 친구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나게 해 주세요.


제가 지금 이렇게 베푸는 것처럼

우리 딸에게 누군가가 항상 베풀게 하시고,

또 저의 딸은 더 큰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우리 딸의 평생에 함께 음식 나눌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시며,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끼니를

항상 허락해 주실 것도 간구합니다.


특히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사랑 나누어 줄

마음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 처럼 저도

우리 딸도 그 사랑 계속 나누게 하실 줄 믿습니다.





참, 이 친구는 무슬림이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피해준다.

TV에서 본적있는 나쁜 공격적인 무슬림이 아니라

사려 깊은 무슬림이다. 엄마 아빠도 좋은 사람이고.

우린 기독교인이지만 딸이 무슬림 친구와

베스트 프렌드라는 것도 난 괜찮게 생각한다.

신념과 종교 이전에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니까.



내가 작은 선행이라도 베풀고,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가 받을 축복이 있다면

그걸 고스란히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나도 우리 엄마 기도 덕에

여태까지 복을 제대로 받고 있다.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위험한 강을 무사히 건넜구나 알게 되었을 때,

그건 내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신 걸 안다.

우리 엄마가 평생 기도로 쌓아온 그것을 통해

내가 축복 속에 있는 게 느껴진다.


사랑받고 자라왔고, 사랑주며

아이를 키울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이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그 아이들에게도 같은 사랑

내려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리고 요즘은 아이 문제 하나하나에 내가 너무

내 감정을 이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슬플 때마다 같이 그만큼 슬퍼하는

그런 건 서로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내가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모든 얘기를

아이들한테 다 나누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도 내 관계가 있고, 딸도 딸 관계가 있다.

서로 사랑하고 걱정하되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그래서 다 알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너무 깊이는 질문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알아야 하니까 가볍게하는

질문을 놓치지는 않는다.


현명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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