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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끈이 떨어진 느낌, 이 뭐지?

밴쿠버와의 첫 만남

by 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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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함.


난생처음 혼자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 느낌이었습니다. 숙소인 UBC 세인트 존스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침대에 걸쳐 앉는데 그냥 지구가 핑하고 한 바퀴 돌면서 어지러웠죠. 갑자기 세상이 멈춰버리고 혼자 멀리로 뚝 떨어져 나온 아득한 느낌 말입니다. 그렇게 2005년 1월 12일 제 오랜 밴쿠버 사랑이 시작되었죠. 당시엔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죠. 어떻게든 떠나온 세계와의 연결이 필요했습니다. 어렵사리 인터넷 케이블을 구하고 노트북을 통해 비로소 인터넷에 연결되면서 안심이 되었죠. 태평양을 건너면서 끈 떨어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익숙한 무언가에 연결된 느낌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죠. 사람은 기대어 사는 존재였던 겁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나 자신마저도 어떻게든 연결된 느낌으로 살고 있었던 거죠. 사람은 사랑이든 일이든 기대고 몰입해서 정신 쏟을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사람이란 그런 존재죠. 결국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려면 그렇게 기댈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중에서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 요소죠.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일 중에 반드시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들이 포함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걸.


그렇습니다. 인간이 인간에 기대어 사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까요. 예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죠. 기회만 되면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고, 퇴근 시간 이후에 일터에서의 동료나 상사로부터의 연락은 반갑지 않았습니다. 주말에는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막상 혼자 뚝 떨어져 나와보니 다리 하나라도 걸치고 있는 심경으로 연결된 느낌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에 집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의존하며 살라는 말도 아니죠. 우리가 사람으로 인해 기쁨을 얻고, 사람과 일을 하고,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사람에게서 상처받는 존재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 아파트를 드나들면 만나는 사람, 어디에서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금 다른 태도를 갖게 되죠.


아무튼 밴쿠버와의 첫 만남은 이랬습니다. 무척 낯설고 아찔했던 기억과 동시에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시작되었죠. 새로운 도시, 새로운 세계. 나는 또 어떤 사람을 만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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