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짐 자무쉬의 <패터슨>이 생각난다. 한결같은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곤 하는 작은 소도시의 버스 기사 패터슨의 소담하리만치 시적인 이야기.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공중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큐쇼 쇼지)의 단조로운 일상을 통해 평범한 삶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정갈하고 규칙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듯이 이불을 개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한 후, 베란다의 작은 나무 화분에 물을 준다.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열쇠꾸러미와 동전, 시계를 챙기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뽑아 마시며, 올드 팝송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틀고 운전석 뒤쪽에는 청소 도구들이 자로 잰 듯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봉고차를 타고 일터로 향한다. 사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지 않은가. 때로 지루하리 만치 그날이 그날 같지만 하루 하루를 가꾸는 소박한 순간들에 행복이 담긴다. 영화는 완벽함이라는 어휘에 담겨있는 거창함을 소박함으로 바꿔 쓴다.
영화의 절반이 지나서야 주인공의 대사가 등장할 만큼, 이 작품은 대사보다 몸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그러나 <퍼펙트 데이즈>는 모노 드라마가 아니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지만, 그의 표정은 매일이 새롭고 충만한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일터의 젊은 동료인 타카시가 말하듯 ”깨끗이 치워받자 다시 더러워질“ 화장실이지만 그의 한결같은 일에 대한 태도는 그가 삶을 대하는 성실함을 대변한다.
비록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남들이 버려놓은 오물을 치우는 청소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변기의 오물조차 작은 반사경을 들이대며 무릎을 끊고 싹싹 솔질을 하는 그의 모습은 경건하기 조차하다. 어쩌면 그건 자신의 삶을 매일 닦고 윤나게 하는 그의 삶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 되면 근처 공원을 찾아 작은 필름 카메라로 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을 찍고 벤치에 앉아 자연을 호흡하며 샌드위치를 먹는 일상이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바쁜 도시인들이 놓치는 자연의 향기와 색감 그리고 음악을 듣고 고전을 읽고 어린 나무를 키우는 작은 순간들이 히라야마의 느린 삶에 비치는 햇살이기도 하다. 지나치면 매일이 같은 것 같은 풍경도 머물고 앉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느 것도, 어느 순간도 같은 것이 없는 세상의 날들이다.
그러나 홀로인 것 같지만 히라야마의 충일한 삶은 그를 둘러싼 이웃들 덕분에 완성된다. 삶은 나나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드는 접촉과 교감의 조합물이다. 그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핸드폰의 알람이 아니라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집 앞 거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비질 소리이다. 그가 자주 찾는 작은 서점의 여주인은 그가 고른 책이나 작가에 대해 단상을 이야기하고, 저녁에 들르는 지하철 역 식당의 주인은 늘 활기찬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동네 목욕탕에서도 자주 만나는 노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자전거를 타고 가끔 들르는 주점에서는 여주인이 그를 반긴다.
이처럼 세상은 각자의 자리에서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단지 그에게 작은 걸림돌 같은 인물은 일터의 젊은 동료 타카시(에모토 토키오)이다. 자신의 일을 하찮아하고 일터에 늦는 것도 다반사. 심지어 부족한 데이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히라야마가 아끼는 올드팝 테이프를 가게에 팔게도 한다. 결국 대책 없이 일터를 떠난 타카시 때문에 히라야마는 그의 몫까지 얹힌 하루의 노동을 힘들게 하지만 또 그날이 지나면 새로운 동료가 일터에 나타나 문제가 해결된다. 시간이 답이다. 그렇다고 타카시가 온전히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일터 근처, 장애가 있는 아이가 좋아하는 귀 잡아당기기 놀이를 위해 전혀 귀찮아 하지 않고 자신의 귀를 내어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히라야마를 미소짓게도 한다. 책임감 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는 듯 대충 사는거 같아 보이는 타카시이지만 그가 그렇게 된 연유를 누구도 알 수는 없다.
그리곤 혹여 지루할새라 소소한 변칙이 음식의 양념처럼 일상에 끼어든다. 히라야마에게 돈을 빌린 후 무작정 일을 그만두어 버린 타카시이지만 그가 데려왔던 여자 친구 아야(아오미 야마다)는 젊은이 나름의 정서대로 올드팝에 심취하며 히라야마와 공감의 연대를 만든다. 그런가 하면 유령같이 누군가는 실체없이 히라야마의 삶에 불쑥 끼어든다. 어느 날, 화장실 세면대 구석에 끼워진 메모지에 우물 정자 모양의 한칸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것을 발견한 히라야마는 무심히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히라야마는 그 종이 다른 빈 칸에 엑스자를 그려 넣으며 당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응답한다. 동그라미와 엑스 기호의 대화가 오고 가며 우물 정자가 다 채워진 어느 날, 'thank you'라는 답신이 메모지의 끝을 맺고 보이지 않는 이들끼리의 위로가 충만해진다. 보이고 들리는 것만이 다가 아닌 세상이다.
그렇게 무탈한 듯 했던 히라야마의 일상에 가출한 조카(나카노 아리사)가 찾아오며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조카는 삼촌을 도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찍어보며 삼촌과의 추억을 쌓는다. 하루 만에 여동생이 찾아와 그녀의 딸인 조카를 데려가지만 제법 성숙한 숙녀티가 나도록 성장한 조카와 소원했던 날들이 치유된다. 영화에서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운전사가 있는 고급차를 타고 온 여동생의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아마도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떠났을 것이라는 단서를 남긴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올드팝과 클래식컬한 책, 작은 나무들을 가꾸는 서정적 날들로 채워져 있지만 한편에는 어두운 기억들이 잠겨있었다. 온순해 보이는 그가 보이는 작은 파격은 사진들을 찢어버리는 장면이다. 자신이 찍은 흑백 사진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버리는 행위는 그가 버리고 싶은 과거일 것이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상처는 때로 타인에 의해 치유받기도 한다. 그래서 아플 때에는 숨는 것보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다.
아픈 과거의 치유는 전혀 낯모르던 한 남자에 의해서 얻어진다. 자주 들르기도 하고 은근히 마음을 두던 주점 여주인(이시카와 사유리)의 전남편(미우라 토모카즈)이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날의 일이다. 히라야마는 강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전남편과 그림자 놀이를 하며 세상의 현상은 자기 생각에 따라 다름을 깨닫는다. 움직이는 두 개의 그림자가 겹치면 어둠이 더 짙어진다는 전남편의 생각과 달리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히라야마의 생각이었다. 어떤 현상에 대한 판단은 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그림자와 동행하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그렇다고 과거와의 화해가 해피 엔딩의 전부는 아니다. 그건 그가 물을 준 작은 나무가 뿌리를 내려가듯 그의 지금의 시간이 흘러 미래 누군가에게 작은 햇살이 되고 뿌리가 되는 시간의 이어달리기라는 연대성이다. 조카에게는 자신이 읽던 책을 그리고 잠시 만난 타카시의 여자 친구 아야에게는 그녀가 좋아하던 올드 팝 카세트 테이프를 선물로 준다. 히라야마는 간간 그의 꿈결에 나타나서 환영 같이 출렁이던 검은 그림자들의 색이 더 짙어지게 보이면 그런대로, 혹은 같아 보이면 같은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벽한 날들’의 정답은 없다. 완벽한 날들은 홀로 그리고 또 같이 사는 순간의 조각들로 이어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진행형의 날들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 영원한 삶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일상이란 것처럼 빛나고 심오한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 너와 나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든든하게 세상을 디디고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