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Jbenitora Aug 05. 2022

6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차 2대를 폐차시켰다

 2007년 봄이 되자 자주색 에스페로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에스페로는 1992년쯤 아버지께서 새 차로 구매하시고 그간 우리 가족의 발이 되었던 차였다. 그러다 취업을 하면서 차가 필요하게 되자 아버지께서는 그랜저를 장만하시고 내가 물려받았다. 출퇴근뿐 아니라 회사 업무용으로 불편함 없이 잘 사용하였다. 차가 낡아서 가벼운 접촉 사고에는 수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마케팅 차원에서 회사차에 회사 로고를 전체적으로 씌울 때 내 차에도 로고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큼지막하게 GS 로고가 컬러 문신을 한 것처럼 차 옆면을 차지했는데 동료들은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그 로고가 멋지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은 차를 바꿔야 여자 친구가 생긴다며 혀를 끌끌 찼다.



 잔고장은 있었지만 쌩쌩 잘 달리던 차는 세녹스를 사용하고부터는 상태가 안 좋아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세녹스는 판매하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작은 승합차에 색깔이 다른 통 두 개를 가득 싣고 다녔다. 그들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차마다 와이퍼 아래 명함을 뿌렸다. 명함을 보고 전화하면 차가 세워진 장소로 직접 왔다. 인적이 뜸한 골목길이나 공터 한적한 곳에서 색깔이 다른 통에 있는 알코올과 혼합제를 1:1로 섞어서 자바라 호스로 주유구에 넣어주었다. 세녹스는 일반 휘발유의 2/3 가격이었다.


 당시 허세를 많이 부리는 사람들이 고급차를 타면서 세녹스를 많이 넣고 다녔다. 처음에는 세녹스에 관심이 없었는데 뉴스에서 유사휘발유라며 보도되어 알게 되었다. 고급차를 모는 아는 형님이 세녹스를 넣는 법을 알려줬고 내 차와 비슷한 연식의 소나타를 타는 형님도 세녹스를 넣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며 추천했다. 주변 사람들도 왜 그런 낡은 차에 휘발유를 넣냐고 했다. 세녹스 광풍이었다.

'남들도 세녹스를 넣고 멀쩡하게 잘 타고 다니는데 뭐 어때'

한편으로는 차가 좀 안 좋아지면 어떠냐는 생각도 있었다. 에스페로는 충분히 오래 탔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통장에 중고차 살 돈 정도는 있었다.


 그렇게 다닌 지 1년도 안되어 에스페로의 엔진에서 말썽이 난 것이다. 시동을 켜고 공회전을 하면 엔진이 웅웅 힘차게 돌아가다가 조용해졌다가 또 웅웅 돌아가다가 조용해지는 것을 반복했다. 사람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시간과 거의 흡사한 주기였다.

'이제 이 녀석을 보내 줄 때가 왔구나!'

가진 돈을 가늠해 보면서 그 정도에 살 수 있는 중고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우리 부서의 과장님이 차를 한대 샀다고 했다. 그는 서른여덟 노총각이었는데 평소에 워낙 알뜰해서 차를 산 것에 회사 사람들 모두 놀랐다. 그는 새 차 언제 태워줄 거냐며 말을 건넨 내게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중고차 알아보고 있다며? 내가 타던 흰색 에스페로 줄 테니 탈래?"

멀쩡한 차를 폐차시키기 그래서 명의를 내게 이전해 준다는 것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자동차 등록사무소에 가서 이전을 해버렸다.

과장님의 흰색 에스페로도 1993년 식이라 차값은 거의 없어서 취등록세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숨을 헉헉 거리는 자주색 에스페로는 고이 보내주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까운 폐차장에 연락하여 폐차 가격을 알아보니 바퀴 휠의 재질에 따라 쳐주는 차값이 달랐다. 에스페로는 철제 휠이라 1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폐차를 하기로 하고 지정된 시간이 되자 견인차가 와서 차를 끌고 갔다.

'15년간 고마웠다 에스페로야'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 첫차와 헤어졌다.


 흰색 에스페로는 전의 차와 연식은 1년 차이가 났지만 편의성은 더 좋았다. 에스페로가 나오던 90년대 초(初)는 연식이 달라지면 차의 성능이 많이 개선되던 때였기에 외형의 변화는 없지만 운전자로서의 만족감은 더 컸다. 직물로 된 시트야 같다지만 수동기어가 아닌 오토 란 점에서 특히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과 다르게 여자 친구는 물 건너갔다며 주변 사람들은 또 혀를 끌끌 찼다. 좋은 차 탄다고 생기는 여자 친구라면 굳이 안 만나도 된다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차는  굴러갔다. 차폭이나 운전환경은 똑같았기에 운전에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타다 보니 아쉬운 점이 생겼다.  창문이  작동하지 않았다. 운전석 창문은 문제없고 다른 사람 태울 일이 거의 없으니 그냥 뒀다. 여름이 되니 냉매가 부족한지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았다. 거기에 세녹스는 이제 넣지 않다 보니 유류비가 만만치 않았다. 오토매틱 기어에 휘발유 콤보는 수동에 세녹스 차에 비해 유지비가 2배는 드는  같았다.  차를 고치는데 돈을  쓰느니 오래   차를 사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적금 만기도 다가오고 있었다.


 업무를 긴밀하게 협조하는 협력업체 직원분과 쉬는 시간에 잡담을 나누면서 새 차를 알아봐야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분은 자기가 타는 차가 일반인도 살 수 있는 LPG 차인데 경제적이라고 했다. 그 차의 단점은 기어가 핸들 옆에 있는 것인데 최신형 모델은 일반차와 같은 기어봉이 있으니 그걸 사라고 했다. 7인승이라 자동차세도 화물용 차와 같이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날 집에 와서 그 차를 검색해보았다. 바이올렛 색깔이 메인 색깔이었는데 때 타지 않는 은회색 모델이 마음에 들었다. 5 도어(door)라 뒷문이 열려 캠핑이나 차박을 하기에 좋고 회사 업무에 차를 이용하더라도 짐 실은 공간이 넉넉할 것 같았다. 차의 생김새도 동글동글 트렌드에 맞게 괜찮았고 LPI라 출력도 휘발유 차에 뒤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한번 돌아서면 예전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점점 흰색 에스페로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흰색 에스페로는 잘못한 게 없는데 마음에서 점점 멀어졌다. 창문을 고쳐주고 에어컨 냉매만 넣어줘도 분명 오래 탈 차인데 언제 또 삐끗할지 알 수 없는 것이 리스크였다. 며칠 뒤 다시 업무로 만난 협력업체 직원분은 추천해준 새 차가 마음에 든다는 말에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있다는 자기 친구의 연락처를 전해줬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새 차키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흰색 에스페로를 보낼 시간이 왔다. 몇 달 전 연락했던 폐차 업체에 다시 전화를 넣었다. 알루미늄 휠이라 20만 원을 쳐주었다. 몇 달 전처럼 폐차업체에서 견인차가 와서 차를 데리고 떠났다. 얼마 함께 하지 못 했지만 고마웠다고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새 차가 있었기에 미련은 없었지만 이제 내 인생에서 에스페로를 탈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 하나가 아쉬웠다.


 2007년 그해 나는 6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차 2대를 폐차시켰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 캐릭터도 펀치 버튼을 누르면 주먹을 휘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