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2022년의 복습
내 인생에 이렇게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가 있을까.
2022년을 보내면서 수도 없이 한 생각이다. 연초는 나름 즐겁게 보냈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 팀의 업무는 여전히 바쁘지만 안정되었고, 학교는 방학이라 잠시 연구를 잊고 벗어나 있기도 했다. 스키장에 가는 등 나름대로 겨울을 즐기기도 했고, 스포츠광으로서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 있는 한 해를 기대하는 재미도 있었다.
봄학기가 끝나가면서 세미나 발표를 망치고 나의 연구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불신, 연구 자체에 대한 회의감, 진로 고민 등으로 조금은 힘든, 하지만 겪어내기에 큰 문제는 없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발표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인데도 발표를 승인해 주고 발표 당일에 엄청난 반기를 든 지도교수에 대한 원망 등으로 멘털이 약해졌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썼던 논문을 여름 3개월 동안 갈아엎고 지도교수에게 허가를 받고 나자, 오히려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혼란도 가중되었다.
본인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서인지 몇 달 만에 만난 지도교수는 아주 호의적이었다. 내 연구 내용에 흡족해하며 굉장히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몇 달 동안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이 칭찬이 나에겐 사실 아무 의미가 없었다. 칭찬을 받아도 뭐 그러려니,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기분이 살짝 좋아졌던 건 어쨌든 한동안 연구는 쳐다보지도 않고 쉬어야겠다는 생각과 뭐 하고 쉴까에 대한 행복한 고민 때문이었을 뿐. 스스로가 몇 달 동안 개고생해서 이루어낸 결과인데, 성취감도 별로 들지 않았다. 연구 이게 뭔데. 내가 이걸 왜 하지. 사람들은 이걸 왜 하지. 이거 잘한다고 사회적으로 왜 인정해 주지.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 할 수 있는 것들 중 잘하는 게 과연 있는 것일까. 지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내가 몇 년 뒤에도 하고 싶을까. 몇 년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은 뭐였지. 그건 왜 안 했지. 돈을 많이 벌면 이런 고민이 안 드나. 정말 재미있는 일을 찾으면 그러면 돈 생각은 안 들까. 내가 이걸 안 하고 다른 일을 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진로를 택하면 몇 년 뒤의 나는 더 행복해질까. 지금까지 해낸 것들을 이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끝없는 생각의 굴레에 갇혀서 두 달 정도를 보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첫 번 째, 나 자신을 처음부터 돌아보기.
연구 능력이나 영어실력 같은 1차원적인 것 말고, 나의 어린 시절부터 내가 지금까지 꿈꿔왔던 직업, 삶의 방식, 인생철학 등을 모두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20대 때 썼던 일기들을 들춰보고,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고등학생 때와 재수할 때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고 내 성격은 어떠한지 돌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의 기준이 어떤지를 일절 고려하지 않고 '나'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에 집착했던 나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해왔다. 생각이 깊은 친구들을 보고 사색에 빠지는 척도 해보고, 독서광인 친구들을 보면서 책도 여러 권 읽고, 진중한 친구들을 보면서 말을 아끼는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진짜 '나'는 사실 추상적이거나 철학적 사고에 빠지는 게 귀찮다. 추리소설이나 스포츠 도서가 아닌 이상 독서도 자주 하지 않는다. 마냥 시끄럽고 밝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노는 게 좋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비난하고 철없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이게 나인데. 나는 내 행복을 좇아 나름대로의 즐거운 삶을 살고 나름대로의 사색을 하고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면서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늘 원해왔던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었다. 사실 직업을 통해서도 내가 원했던 것은 늘 즐거움이었다. 즐거움이라고 해서 직장에서 클럽음악을 틀고 춤을 추겠다는 것이 아니다. 덕업일치를 이루어 좋아하는 일만 하고 힘든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부를 통해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다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명예를 통해 내가 '즐거운' 삶을 사는 데에 방해꾼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나는 어찌 되었든 '즐겁게' 살고 싶은 거다.
두 번째, 일단 이것저것 해보기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10년 동안 같은 공부만 하면서 다른 일은 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일 거라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사실은 모르는 일이다. 금융업계에 종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금융업을 잘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패션을 배워본 적 없기 때문에 나는 패션을 모르지만 그쪽 일을 못할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일단 닥치는 대로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 하는 연구와는 조금 다른 방법론을 배우는 '데이터 사이언스' 공부도 해보고, 여러 콘퍼런스에 가보기도 했다. 뜬금없이 테크회사들이 모이는 콘퍼런스에 가기 위해 밤을 새우고 시애틀에 다녀오기도 했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해 보니까 오히려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겠는데? 왜 굳이 난 안된다고 생각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지 '안 해봐서 못하는'게 아니라 '하면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세 번째,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 얻기
어찌 보면 인생 최대로 징징거려 봤다. 대학교 선배, 대학원 선배를 비롯해 일면식도 없는 한국인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하기도 하고, 링크딘에 뜨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보기도 했다. 친척 어르신들, 사촌 언니 등 수많은 가족분들께도 손을 뻗었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 듣는데) 부모님께도 상담을 수없이 했다.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나보다 성숙하고 배울 점이 많아서 친구들에게도 상담을 많이 했다.
이렇게 인생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팁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되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정리되는 것도 상당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이 많았다. 특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주고자 하는 것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든든한데 내가 못할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버틴 것도 결국엔 다 좋은 사람들 덕분인 거다.
네 번째, 다시 내 본업 뒤돌아보기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을 한 번 밟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싫다고 뛰쳐나가는 건 도망이지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연구를 되돌아보고, 지난 십 년 간 해 온 공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다. 꾸물꾸물 써놓았던 논문들을 둘러보고, 내가 배운 여러 기술들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오히려 놓아진 마음으로 마주하니까 조금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이 분야에 한 숟갈을 더 얹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 얻어가는 건 없잖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써 내려간 이 내용은 나만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이라는 보람이 10g 정도는 느껴졌다. 뭐 애정이 어쨌든 보람이 어쨌든, 그래도 지난 십 년 간 열심히는 살았고 스스로 한 번 칭찬해 줄 정도는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결국 나쁘지는 않았네, 내 본업도.
마지막, 한국에서의 행복한 시간
앞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사실 99프로는 회복이 되었다. 길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땅굴을 파고들어 가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방황했던 밑바닥에서 원래의 나로 99프로 돌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침몰부터 셀프 구조, 그리고 몸을 말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 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어찌 보면 길지만 가라앉았을 때의 내 심정을 생각해 보면 6개월 만의 회복이란 기적처럼 빠른 회복이다 (물론 우리 랜더스의 우승도 회복 속도를 조금 높여주었다:D).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한국에 돌아와 약 7주 간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그 와중에 헬스장에서 PT도 받고 여행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하루하루 집에서 쉴 틈이 없이 여기저기 나다녔는데, 그게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역시 나는 외향형인가..). 누굴 만나도 그 사람이 너무 좋고 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었다. 길에서 부딪혔는데 웃는 얼굴로 사과하고 지나가는 학생마저도 참 좋았다 (이렇게 쓰니까 조금 변태 같지만 그만큼 일상이 행복해졌다는 뜻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자존감을 채워주었고, 친구들의 얼굴만 바라봐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이 글을 친구들이 읽는다면 상당히 징그러워 할 수도 있지만..
이로서 나는 120프로 회복하고 채워졌고 더 강해졌다.
부끄럽지만 30년 이상 살면서 '정말 힘들다'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다. 인복이 너무 많아서 그 복을 누리느라 평탄하게 살았는지, 예민하지 않은 성격이라 그냥 지나 보내고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늘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데 지나가는 게 아쉽다고 느끼면서 살았다. '이렇게 더 이상 살아낼 자신이 없다'라고 느낀 것은 2022년이 처음이었고, 감히 바라건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2022년이 있었기에 나는 앞으로 더욱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살게 되었고 적당한 힘듦으로는 내 멘털을 조금도 흔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도 아직 미성숙하지만 '어른'을 향해 반 걸음 정도는 가까워질 수 있었던 한 해, 2022년에게 감사하고,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벌써 멀리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