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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롤코 Aug 10. 2024

요가하는 맛


성인이 되어 꾸준히 하는 것 중 하나가 요가다.

요가를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몸이 유연해지고 싶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살던 곳 근처에 요가원이 새로 생겼다.

등록 전에 먼저 수업을 받아봤는데 그때 아쉬탕가 나마스카라 자세를 하고 등이 확 펴지면서 시원함을 겪은 후 고민 없이 요가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날부터 지금까지 요가는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요가를 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헤매는 동작들은 똑같이 헤맨다.

물론 해낸 동작들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아쉽다.

이런 마음이 들어오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어떨 땐 몸에 서운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난 왜 요가를 계속하고 있고 하고 싶은 걸까.



새로운 동작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선생님께서 산스크리트어로 요가동작을 설명해 주면 대충 알아듣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그 동작들을 하고 있는데  어느순간부턴 잡생각이 없어진다.

일단 요가를 할 땐 잡생각을 할 틈이 없다.

잡생각이 들어오면 바로 몸이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중심을 잃는다던가 부상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동작에만 집중해야 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요즘은 요가를 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오직 매트 위에 있는 나의 몸과 호흡소리에만 귀 기울이게 된다.

물론 동작을 하다가 시선을 천장으로 돌린다던가, 옆을 향하게 된다던가, 마주 보는 사람과 타다사나 자세로 있을 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요가를 하다 보면 내가 잘 몰랐던 나의 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게 알게 되는 내 몸에 대한 첫 번째 사실은 뻣뻣한 하체다.

난 하체에 유연성이 정말 없는 편인데 하체라고 표현한 건 고관절+햄스트링이기 때문이다.

요가는 유연함만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체가 유연하면 많은 동작들을 잘 해낼 수 있다.

요가엔 잘하고 못하고 가 없고, 요가는 수련이고,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남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아사나의 정석이 있는데 내 몸은 도무지 그쪽으로 가지 못한다.

게다가 요가를 매일 연습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의 유연성은 늘 그 자리 그대로인 것 같다.

햄스트링과 고관절이 뻣뻣해 어중간하게 무릎을 펴고 자세를 유지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하려는 내가 뿌듯하면서도 덜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웃겨서 좀 민망할 때도 있다.

요가를 하기 전까지 난 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르몬의 영향이려나.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 조급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반응이나 시선 한정이었지만)

그러다 보니 겁도 많아지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너무 조심스러워 시도도 제대로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 애써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해보면 잘했을 걸?' 하는 마음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 몸은 합리화가 통하지 않는다.

잠시 뇌의 자아의 스위치를 끄고 나온 나의 몸의 자아는 생각보다 민첩하지만 뻣뻣하며 어떨 땐 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뇌의 자아보다 타인의 도움을 미안해하지 않고 그 도움의 손길(핸즈온)이 왔을 때 받아들이는 반응도 내 뇌의 자아보다 다정하다.

함께 짝을 지어 요가 동작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내 몸의 자아는 생각보다 타인에게 친절하며 심지어 나에게도 친절하다.


내 뇌의 자아는 내가 하려던 일에서 실패하거나 내가 생각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책을 하거나 

심할 땐 나쁜 말을 하며 내게 생채기를 냈는데 

오히려 나의 몸의 자아는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도전해 보고

실패하면 실패도 온전히 받아들이며 다음에 다시 해보자며 토닥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난 나의 몸의 자아와 만나는 시간(=요가) 편안함을 느낀다.




*

내 몸이 말해주는 두 번째 사실은 힘없는 상체다.

살면서 팔의 힘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깨의 힘일 것 같다.

어깨는 그저 어깨라고 달려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요가를 하면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거나 어깨와 팔의 힘으로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들

특히 발을 바닥에서 떼는 동작들을 할 때 내 상체가 터무니없이 약함을.

그저 장식으로 달려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초반에 많이 힘들었다.

사실 지금도 힘들지만.

요가를 할 땐 최대한 뇌의 자아가 나오지 않게 하고 싶지만 가장 많이 나왔던 지점들이 상체의 힘을 베이스로 갖고 가는 동작들이었다.


예를 들면 바카사나

아무래도 최근에 기를 쓰며 도전한 동작이라 그런 것 같다.

물론 바카사나를 할 땐 하체의 힘도 필요하고 코어 힘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동작이 무서웠던 이유는 내 몸이 어깨와 팔에 지탱해 붕 떠있으니 내 시선은 땅에서는 떨어져 있는데 그리 멀지 않고

내 몸은 불안한 상태로 떠있다고 생각하니 과감하게 힘을 실을 수 없었다.

넘어지는 건데 그래 그럼 좀 아프겠지.

근데 그게 뭐 그렇게 무섭다고.... 두려워했던 건지.



어느 날 그런 나에게 화도 나고 시도는 해보고 싶어서 준비자세로 있는데 

내 몸의 자아가 "야 그냥 해봐"라고 했다.

.. 에라 모르겠다!! 하고 무게중심을 상체로 옮기는 그 순간.

내가 생각한 것보다 견고하게 나의 근육들이 일을 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어깨와 팔이 공중에 떠있는 내 하체와 얼굴이 바닥과 만나지 않게 잘 버텨줬다.



*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여전히 뇌의 자아의 지배를 많이 받고 여태 지배를 받아온 그  시간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너 생각보다 괜찮으니 한번 도전해봐 하고 내 어딘가에서 말해주던 그 소리는 다름 아닌 내 몸의 자아였을 거며(아닐 수도 있다)

예민한 80%에 가끔은 그 예민함을 덮어주는 강한 20%의 몸의 자아로 여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내 몸의 자아를 만나는 시간이 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내 몸도 힘들 땐 힘들다고 한다.

내게 조금은 불편한 부동자세로 5분 이상 버텨야 하는 하타요가를 할 경우 조용히 속으로 17+1의 그 숫자를 읊조리기도 한다.

그거로도 못 견딜 경우 조용히 몸을 편안하게 풀어주기도 하지만

버틸 수 있을 땐 과감하게 나를 타이르며 끝까지 도전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도전을 끝내고 나면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있는 뿌듯함이 찾아온다.

이 맛에 요가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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