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때때로 감히 돈, 단순한 편안함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럴 땐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일지라도 꽤 과감히 실행한다.
아이라는 세계는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도 그런 존재로 느껴져 시간이 지나 후회하기 전에 노력해보기로 했다. 육아휴직, 육아시간 등 복지제도는 이 선택이 다수가 아닌 시대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기 준비에 최종 승인 버튼을 눌러준 이유가 있는데, 회사생활이라는 시공간을 잠시, 아주 잠시라도 일시정지하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임신을 하고, 2시간 일찍 퇴근하는 단축근무가 개시됐다. 일부 회사원들은 주4일제보다 하루 총 근로시간(8시간)을 줄인 근무제도를 더 절실히 바라기도 한다. 임신 덕분에 9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 일 6시간 근무제도 체험판을 경험해본 것이다. 이상하게 울적했다. 빠르게 퇴근하고 아주 간단히 운동을 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 할 일이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어 쉬고 싶었을 뿐인데,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마음껏 놀고 먹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주한 병가 일명 눕눕 생활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했다.
그러자 우습게도 생각은 호떡 뒤집듯이 슬그머니 바뀌었다.
'계획했던 것 보다 조금 더 일찍 조기 복직을 할까.'
아니 회사에서 하루 빨리 거리를 두고싶어서 그만뒀는데 이젠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일련의 선택과 결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졌다.
회사를 벗어나면 행복해질거야.
회사 근무시간이 짧아지면 행복해질거야.
다시 회사를 다니면 나아질거야.
현재를 리셋시키고 미래를 변화시키면 지금의 상황이 해결될거라는 파랑새증후군에 틀림없다.
더 이상 지금이 아닌 미래 어딘가에서 내 행복을 찾을 수만은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서 반드시 파랑새든 노랑새든 찾아야만 한다.
회계업무를 맡았을 때 사소한 업무 중에 종이로 된 수십, 수백 건의 지출결의서에 도장을 찍는 단순한 노동이 있었다. 그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다. 이 행위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기획한 사업들이 실행에 옮겨져 마침내 시민들 앞에 당도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카드, 계좌 이체 한건 한건들이라고 정의했다. 톱니바퀴 여러개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언제나 대체될 수 있음에도 오늘의 공장가동에 당당히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었다는 의미를 부여하자 그 시간이 오히려 즐거워졌다.
오늘 하루 내 호흡이 의미있었음을 느끼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의미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충만한 하루를 만끽한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중이라면, 어디에서 그 의미를 찾는지 생각해봄직하다.
나는 결국 ‘타인, 관계, 나의 쓸모’이 세가지가 혼합된 상태일 때 삶의 활력을 느끼는 사람이다. 회사와 연결된 시간 속에선 타인, 관계라는 조건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충족되는데다 의미를 부여할만한 프로젝트가 눈 앞에 주어진다. 쉽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그런 일은 부단히도 쓰는 것, 그리고 내보이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지금 이 순간, 이 곳이 내가 만든 숲속의 월든이다. 내 마음을 깊이 관찰한다. 나에게 연결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연결될 자급자족 생산물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나는 내가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내 삶이 내가 가치있다고 느껴지는 일들로 꽉꽉 채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