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소비의 아이러니
신년 이벤트 16회 39만 원
(64만 원, 40% 할인, 80일)
오래전부터 찜해뒀던 요가원 할인이 떴다. 어맛! 이건 꼭 해야 해!! 다니고 있는 곳의 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할인 종료일인 2월 28일에 맞춰 앱에 접속했다. 원래 가격은 얼마지? 자연스레 정가 페이지도 둘러보기 시작한다.
20회 60만 원 (80일)
40회 100만 원 (140일)
60회 120만 원 (200일)
머릿속 회로는 벌써 회당 가격을 계산하고 있다. 뭐야, 60회를 하면 이벤트가보다 더 싸잖아!? 결제페이지 직전까지 갔던 손가락은 어느새 '뒤로' 버튼을 누르고 있다. 60회 가격을 30분째 째려보고 있다... 곧, 간과했던 숫자 하나를 발견한다.
(200일)
숫자만 보면 치솟는 계산 본능.
200일 동안 60번? 주말 빼고 대략 6개월, 한 달에 10번, 몇 번 빼먹을 날을 감안하면 일주일에 3번. 지금 다니는 곳이 3월에 끝나니까 빠듯하겠는걸.. 아이.. 그래도 지금 해야 싼데.. 별것 아닌 고민에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긴다. 저녁시간이 되어 결국 결정을 못한 채 앱을 닫고 만다.
돈 쓰는 일의 아이러니
세상에 돈 '잘' 쓰는 게 젤로 어렵고, '안' 쓰는 게 젤로 쉽다. 돈을 '안' 쓰고 살긴 어렵지만 '잘' 쓰긴 더 어렵다. 돈 '쓰는' 건 참 쉬운데 '안쓰는' 건 더 쉽다. 한해 한해 돈 좀 써본 시간이 늘수록 돈을 '잘'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게 더 쉽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가장 저렴한 회당 가격을 선택하면 6개월 동안 3배 더 빡시게 '돈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돈을 더 잘 쓰는 선택이란 대체 무얼까.
세상을 조금 단순하게 결정하게 둘 수는 없는 걸까, 그냥 한 달에 얼마,라고 간결하게 쓰면 될 것을....
-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
결국 난 회당 가격이 더 비싼 16회를 선택했다. 아무도 정가로 사지 않는 정가보다 무려 40%나 싼 가격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포인트도 무려 3프로나 받았다. 그 만이천 원이 나중에 백이십만 원짜리 회원권을 살 때 요긴하게 쓰일지 누가 아는가. 난 오늘도 오만 원짜리 OO편의점 상품권을 만오천 원이나 싸게 사서 마트보다 비싼, 그리고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편의점 간식을 왕창 사고 합리적 소비를 했다며 뿌듯해한다. 케첩 한 통을 사려다 각종 소스 5개를 더 담아 40%나 할인받고, 배송비 3천 원이 아까워 라면 한 박스를 더 담고 만다. 선반과 냉장고는 가득 찼는데 이상하게 먹을 게 없다.
합리적 소비란 이런 거죠, 여러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