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제 숙제는 그만 할래요

by 모모제인

요즘 내 일상은 매일매일이 숙제같다.


눈뜨면 식사준비 - 아침은 꼭 먹어야 되니까!
오전 운동가기 - 운동강사가 운동을 안할 수 있나!
오후간식 준비 - 빨리 키 커야지!
엄마표 학원 개장 - 정해진 공부량은 채워야해!
저녁준비 - 얼른 먹여놔야 수업가지 !
요가수업 가기 - 한푼이라도 벌자 !
10시반 퇴근 - 얼른 자야 내일 일도 하지 !


목적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고, 졸려서 자는 게 아니고, 운동도, 수업도, 해야 하니까 하고 있다. 모든 일을 해야되는 일, 해내야 하는 일, 해 치워버려야 하는 숙제처럼 하루를 산다.


꽃이 만발해도 꽃이 안보이고 주말엔 주중에 밀린 숙제를 한다. 문득 무얼 위해 이렇게 사는지 회의가 들었다. 무한리필되는 매일, 매일 해야하는 숙제들..


작년엔 이렇지 않았다. 더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저 즐거웠다. 대체 왜 이렇게 되버린 거지?


변화가 버거운 나이(?)라 그런가

이사오고부터 뭘 하나 할래도 매번 생각을 해야 한다. 전엔 어떠한 경우수에도 뇌회로가 자동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의사결정에 드는 피로감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어느 병원이 좋은지 서칭해야 하고, 운동센터를 새로 골라야 하고, 야채는 어디가 싼지, 배달되는 마트는 어디가 나은지, 차를 가져갈지 자전거를 타고 갈지, 등등, 생활반경 모든 걸 다시 세팅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발품을 팔아야 하고, 움직이기 전에 한참 고민해야 한다. 그만큼 체력이 방전되는 속도가 빨라진것 아닐까? 해야할 건 그대로인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해서 번아웃이 와 버렸나?


공부 스트레스 때문일까

첫째가 중학생이 되었다. 학구열이 높은 동네로 왔다. 아이들이 못 따라갈까봐 걱정이 된다. 아이의 학업이 내 성적표 같아 조바심이 든다. 이젠 내신이 따라다닐텐데 벌써부터 걱정이야. 그냥 하던대로 집에서 시킬까? 공부 시키다가 맨날 싸우기나 하고 이렇게 가는게 맞아? 학원 보낼래도 걱정이야. 일단 이번 학기만 방과후 교실로 돌리면서 정보를 좀 찾아보자. 학원이 이렇게 많은데 사실 어딜 보내야할지도 모르겠어. 학원 레테('레벨테스트'의 줄임말)가 입시 못지 않다던데 실력 안된다고 받아주지도 않으면 어쩌지? 알아서 해주면 안되나? 난 학교 다닐때 안 저랬는데 대체 누굴 닮은거야?어쩜 이렇게 성향이 제각각이야. 한놈 잡아두면 다른 놈이 빠져나가고, 한놈 잘한다 싶어 맘 놓으면 다른 놈이 말썽이고. 애들 공부시키다가 나 죽네.


살림살이는 왜이리 팍팍한지

요즘 마이너스, 대출 없는 집이 어딨어? 우리가 그동안 이사할일 없이 살아서 그래. 알 필요 없이 살아서, 뭘 몰라서 행복했던 것 같아 우리. 남편과 매일 하는 대화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그래서 더 행복했다. 나중의 행복을 담보로, 나중의 수익을 담보로 현재의 희생과 대출을 감내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시골 48평 아파트를 한번도 깨지 못한 최고가에 샀고, 팔지도 못하고 우리가 살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두고 이곳으로 왔다. 세입자가 들어오자마자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해서 아이맥을 팔았다. 좋아서 한다던 요가는 생업이 되었다. 그냥 할 때는 골라서 갔는데 간절해서 할래니 오란데가 없다. 운동강사니까 내 운동도 뺄 수 없다. 저녁 늦게까지 수업하랴, 내 운동하랴, 체력이 바닥난다. 요태기가 왔다. 그래도 등록해놨으니까 돈 값 하려면 가긴 가야한다. 덕업조차 숙제가 되버렸다.


그래서 어떡하자고?

답은 찾아야 이 글을 끝낼수 있을거 같다.

우연히 어제 책을 하나 빌렸다. 힙으뜸으로 활동하는 운동 인플루언서의 책이다. 거기에 내 숙제가 있었다. 그리고 해답도 있었다.


매일 하는게 답이 아니고 계속 하는게 답입니다. 오늘 못했다고 내일 두 배로 하지 마세요. 숙제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 살아봐도 되나요?

눈뜨면 식사준비 - 배고프면 점심 더 맛있어~
오전 운동가기 - 등록비 날리는 것 말고 뭐 있어?
오후간식 준비 - 키 작으면 더 귀엽지 뭐!
엄마표 학원 개장 - 못해도 먹고사는데 문제없어!
저녁준비 - 그냥 외식하자고~~
요가수업 가기 - 힘들면 걍 대강 써, 대강!
10시반 퇴근 - 오늘일은 내일로 미루고 살자!


안해봐서 그런데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거 맞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들 퇴근할 때 출근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