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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딸이라 미안

딱 나 같은 딸

by 모모제인

요즘 딸이랑 관계가 만만치 않다.
툭하면 토라지고 방문 쾅 닫고 짜증내고.


사춘기가 왔나봄?

시작은 공부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아는데 하기는 죽어도 싫고. 그래, 너 하고싶은대로 해봐라. 그렇게 일주일을 서로 투명인간 대하듯이 지냈다. 대화를 할래도 만만치 않다. 말이 안통한다는 게 이런건가보다. 기준 자체가 다르다.


나 : 수업 못 따라가면 학교 갈 맛이 나니?
딸 : 걍 친구들하고 놀거나 딴짓하면 재밌는데?

나 : 그래도 성적이 안나오면 기분 안좋지 않을까?
딸 : 내 실력인데 어쩔수 없지.


설득하려 들수록 더 삐걱인다. 부모의 관점을 주입할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잔소리도 못하겠고, 가만히 보고있자니 그것도 못하겠고, 나랑 있는 시간 자체가 공부랑 귀결되는거 같아서 미안하면서도 그렇다고 안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이는 학교를 좋아한다. 아니, 집에 오면 공부해야되서 학교가 좋단다. 끝나고 집에 오는 걸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그 마음 십분 이해가 된다. 어제도 하교 후 다이소에 가재는걸 그냥 들어왔더니 방문 쾅 닫고 내내 토라져 있었다. 책 펴란 얘기도 못하겠고 저녁 준비하다 보니 못본새 나가버렸다. 어딜 간건지 궁금해도 엄마연락엔 늘 시큰둥이다 .


그래도 어버이날

그래도 어버이날이라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편지가 놓여있다.

딱봐도 억지로 쓴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동생도 꼬셔서 편지 써놓고 자라고 구슬렸단다.


꼴뵈기 싫어 죽겠는데 애틋하다.


툭툭거리는 표현 속에 엄마는 딸의 마음이 보이는데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엄마아빠 기대만큼 하고 싶은데,

지도 그러기 싫은데,

도저히 못하겠는 그 마음.

의지대로 하고 싶지만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는 속내가 나한텐 보인다.


엄마, 나도 잘하고 싶어,

근데 잘 안돼.

그래도 나 미워하지 마.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기를 잘 보내주고 싶은데 엄마가 하는말은 다 잔소리고 듣기 싫은 훈계처럼 느껴졌던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나서 지금 나는 딸에게 아무말도 하지를 못하겠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야, 라는 거짓말을 나도 똑같이 하게 된것 같아서.




아이는 부모의 모래를 가져다 본인의 모래성을 쌓는다는 말을 오늘 아침 어느 글에서 보았다. 예쁜 조개껍질을 주고 싶은데 아이 손에는 결국 나의 모래가 들려있다.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내가 가진 모래가 얼만큼인지 매순간 의심하게 된다. 엄마경력 14년차인 지금까지도 나의 모래성은 끝없이 흩어지고 부서지며 한 주먹씩 아이에게 흘러간다. 파도에 휩쓸려 모래성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는 모래를 저 멀리서 퍼다 나르는 심정으로 나의 모래성을 쌓아가며 아이를 키운다.




다이소 못가게 해서 토라졌던 아이가,
다이소에 몰래 가서 케익재료를 사왔단다.

어제 몰래 사라졌던 게 그거였단다.

밉고 짜증나지만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손을 내민다. 그래도 엄마라서, 엄마가 준 모래더미에 섞인 유리알에 손이 베여도, 아이는 그걸 양손 가득 받아들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엄마도 나에게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난 늘 엄마에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니도 딱 니 같은 딸 키워봐라.
이 말은 진짜 명언이다.

못난이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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