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 원래 엄마가 아빠보다 더 좋았는데 요즘엔 아리까리해.
나 : 왜?
딸 : 아빠는 재밌잖아.
나 : (...)
셋이 나란히 누워 아빠랑 장난치던 딸이 갑자기 나를 휙 돌아보며 급소를 찔렀다. 아빠는 자주 화 내서 싫다 할 땐 언제고. 이래서 위트 있는 나쁜 놈이 인기가 많은 건가ㅎㅎ 그래, 아빠랑 놀면 좀 재밌긴 해, 놀리는 재미도 좀 있고, 일단 기분 안 나쁘게 드리블을 잘 치잖아.
나 : 근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딸 : 아빠는 무서울 때도 있는데 재밌을 때도 반반이거든? 근데 엄마는.. 음... 항상 진심이야.
나 : (헉....)
와.. 이제 아이도 관계의 감을 느끼는구나. 매사에 진심이고 늘 배려심 있는 사람은 상대에게 미묘한 거리감을 준다. 원래 허물없어 보이는 사이는 할 말은 하면서도 직언에 욱하지 않고 티키타카하는 유들유들한 대화가 있는 법이다.
모모 씨는 곁을 잘 안 내주는 사람이야
오래전 지인이 했던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당시 난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직장동료와의 관계, 사무실에서는 하청업체이지만 회식자리에선 호형호제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모든 게 어려웠다. 맘 속엔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친한 것과 사회적 역할을 지키는 것 사이의 경계를 세우기 어려웠다. 친해지면 편파적이 될 것 같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친근하면서도 일로서 소신을 지키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의 심리적 이물감이 날 스스로 고립시켰다. 진심만으로도 친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퇴사 후, 의무적이었던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났다. 한동안 그 신념을 잊고 지냈는데, 딸의 입을 통해 현실이 다시 묵직하게 다가왔다.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부모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이가 아니다. 아이들과도 작은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예전에 나를 괴롭혔던 명제를 아이의 입을 통해 마주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원칙과 소신을 가진 어른으로서 널 이끌어주면서도 허물없이 친근한 엄마와 딸이 되고 싶어.
어른이지만 친구 같은 엄마와 딸,
관계의 딜레마는 평생 끝나지 않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