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뒤지다가 우연히 오래된 아기수첩을 발견했다.
막내아이의 수첩 첫 장에서 흑백사진에 선명한 하얀 두 점,
잊고 있던 두개의 아기집을 보았다.
나 : 막내야, 이리와봐~ 너 원래 쌍둥이였다?
막내 : (눈이 휘둥그레지며) 지인~짜???
그러고는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막내 : 그럼 이 아이는 어디갔어?
나 : (....)
셋째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던 그 날, 첫눈이 펑펑 내렸다.
둘째까지 받아주었던 의사선생님은 우리 막내를 확인하고 어떠케!!! 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가 잘못된 걸까, 하는 불안함을 깨고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갑자기 머리속이 어질.
셋째 임신이 쌍둥이..?
이 아이는 축복일까?
불현듯, 5년 전 아이를 지워달라고 구걸하듯 동네 개인의원들을 찾아다니던 날이 떠올랐다.
배속 아이는 온전치 않았고, 29살의 나와 가족들은 평생 지니고 살 아이의 고통을 상상하며 괴로워했다.
나의 잘못 때문에 나의 분신으로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죽길 바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로 고통이었다.
하지만 낳기로 했다. 아니, 낳을수밖에 없었다.
입이 닳도록 고통스런 이야기를 수십번 반복했지만 우리를 받아주는 의원은 없었다.
그리고 2주 후 검진일.
아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그건 상실이었을까, 축복이었을까.
산모교육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유산의 상실에 이 따위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세 개의 우월한 유전자를 얻었고, 두 개의 열등한 유전자를 잃었다.
세 개, 아니, 이제 세 명이 된 우월한 유전자의 기에 빨리듯 분주하게 15년을 살았고
어느새 두 유전자의 존재를 잊었다.
아이가 셋이예요,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자기랑 배속에 같이 있던 아이는 어디로 갔냐는 막내의 질문에 담담히 대답했다.
정말 막내는 체력이 대단하다.
마르고 키도 작은데 ..
우월한 유전자로 살아남아서 그런거니?
가끔, 이 아이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한다.
가끔, 이 아이가 다섯째 아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지난 아기수첩을 들여다본다.
엄마가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수첩을.
상실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괜챃지 않아도
괜찮은 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