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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Aug 05. 2024

소재 찾아 삼만리

나의 첫 다큐멘터리 도전기 02.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겁도 없이 그 말만 믿고 덜컥 다큐멘터리 워크샵을 시작해버린 나. 감독님은 첫 시간부터 무엇에 대해 찍을 것인지에 대한 브리핑을 시키신다. 겁이 덜컥 났다. 도대체 나는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이 수업을 듣게 된 걸까? 


처음 카메라를 들고 싶은 욕망은 장애를 가진 특수학교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첫 경험에 대한 작은 풋티지를 남기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워크샵일정과 아이들의 현장실습 기간이 맞지 않아 해당 소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더욱 흥미가 생겼고 나도 무리에 끼어서 섞이다 보면 어떻게든 영상 하나를 완성해 손에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슬며시 생겨났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내야 할까. 

머리를 굴려도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감독님은 3년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나를 괴롭한 무엇. 

3년 이상 내가 골몰한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나는 3년 동안 무엇에 대해 골몰해 있었나. 나는 지난 3년 육아와 일 그리고 자기계발의 굴레 속에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에 대한 나의 양가감정은 아주 어릴 때 부터 시작되었다. 아빠는 늘 화가 나 있었고, 모든 일에 짜증을 냈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늘 불안했고 불편했다. 어느 순간 나는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돌아보지 않기로 작정했다. 


스무살이 되어 나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나의 아빠에 대한 감정은 해소되지 못한 그대로 나의 어린 시절 어딘가의 시점에 멈추어 버렸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족과 만나는 일이 더 뜸해지고, 감정적으로 엮일 일도 적어진다. 오히려 편했다. 아빠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온순해졌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도 많아졌다. 터울이 많은 동생들은 아빠를 나보다 조금 더 편하게 대했다. 


나도 변한 아빠가 좋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불편한 지점이 존재했다. 돌이켜보면 아빠와 나는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크게 없다. 가볍고 즐겁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침묵하거나. 그러나 지금 이대로 이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 만나는 아빠는 조금씩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 공학박사인 아빠가 인터넷 뱅킹 사용 방법을 갑자기 까먹는다던가, 같은 질문을 계속 한다던가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가족 모두는 아빠에게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각자가 가진 삶의 고단함으로 아빠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냥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모두가 괜찮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결국 아빠는 3년 전 알츠하이머 초기 경도성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호전될 가능성이 적은 병이나 그나마 약을 먹고, 주변 환경을 바꾸어 줌으로서 병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아빠의 기억력은 분명히 쇠퇴하고 있다. 


감독님이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떠오른 아빠의 얼굴. 나는 괴로웠다. 그것만은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나는 영영 아빠가 누구인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가진 복잡한 감정을 아빠가 살아계실 때, 기억이 그나마 조금 남아 있을 때 정리해야 한다는 의무감 마져 들었다. 


그러나 의무감이 나는 여전히 무겁고 싫다. 아빠의 병을 확인하고도 '괜찮을 거야. 지금 나쁘지 않아.'라고 스스로를 속이듯 위로했던 나. 가족 중 나와 아빠는 가장 많이 닮은 편이다. 성격적으로도 외모적으로 취향으로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아빠의 기억과 시간이 다 한다면, 나는 어디서 누구에게 아빠가 누구인지, 또 내가 그에게 받은 상처와 복잡한 감정에 대해 나누어야 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아빠'에 대한 아주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족이기에. 가족이라서. 정말 피하고 싶고 쉽지는 않다.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을 찍으면 객관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을텐데. 복잡한 실타래 속으로 뛰어들어 그 안에서 길을 잃고 마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나는 다큐멘터리의 소재를 결정하고야 말았다. 아빠. 가장 모르는 사람에 대하여 짧은 이야기를 찍어보기로 말이다. 


 (사진출처: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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