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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뚜기 Jul 08. 2021

119 불러! 내 새끼 살려주세요!!

14만 원짜리 관장약 이야기

평범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저녁식사를 했다.

날이 선선하길래 아이들과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가는 도중 6살 큰아이가 배가 좀 아프다고 했는데

"거봐.. 너무 많이 먹으니까 배가 아야 하잖아."

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얼마 걷지 못해 큰아이가 주저 앉았다.

"엄마.. 너무 배가 아파서 못 걷겠어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이를 엎고 집으로 급하게 돌아왔다.

방에 눕혀 배를 살살 문질러 주니 아프다고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싶어 한두 시간 뒤 나도 잘 준비를 하고 누우려고 하는 찰나


갑자기 아이가 미친듯한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었다.

무서웠다. 당황스러웠다.

머리가 노래졌다.


아까처럼 배를 살살 만져주려 했으나 딱 봐도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아이는 정말 자지러졌다.


119... 119!!!!!

119에 전화를 했다.

생애 처음이었다.

내 생에 살면서 119에 전화를 할 날이 오다니.


하필 인근에 있는 구급차가 현재 출동을 나가 있는 상태라 멀리 있는 곳에서 구급차를 보내준다고 했다.


아이를 거실로 겨우 안고 나와 구급차를 기다렸다.

20분 남짓한 시간이 흘러 겨우 구급차가 도착했다.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구급차로 가는 동안 아이는 처음보다는 조금 덜한 상태였지만 계속적인 복통을 호소했다.

응급실에서 구급대원분들께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구급대원분들 정말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자정이 다돼가는 시간에도 이미 많은 대기자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거의 다 내복 차림이었고, 엄마들도 갑자기 뛰쳐나온듯한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대기실에서 아이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나도 그제야 나의 모습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잘 때나 입는 목 늘어난 티셔츠와 몸빼바지..


그랬다.

아이가 아프니,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파도 병원 갈 땐 옷을 갈아입고 가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었다.

갑자기 모든 게 내 탓 같았고 아이가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내가 미련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이는 일시적인 장꼬임으로 관장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니 괜찮아져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관장 비.. 14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물을 남긴 채..


다시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던 예전의 나는 어디 가고


한글을 빨리 배우길

그림을 잘 그리길

예의 바르길

운동을 잘하길


아이에게 원하는 거 투성이인 엄마가 되어버렸는지..


반성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무너지고


반복해도 내 새끼 안 아픈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다.

내 아이의 이름이 소아 응급실에 올라와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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