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기 프로젝트
올해 유난히 부고 소식을 많이 듣는다. 장례식장도 찾기 힘들고 심지어 화장터도 예약하기 힘들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젊어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분들도 치매에 걸리고, 암에 걸리고, 결국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과거에는 그런 병에 발목이 잡히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므로 노인 환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건 좋은데 연장되어 주어진 나날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쯤해서 듣는 말이 또 있다.
"젊어서 돈 모으려고 고생하다가 그거 써보지도 못하고 가네, 쯧쯧!"
"아끼지 말고 몽땅 쓰고 가야해."
"너도 돈 좀 쓰고 살아!!!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
간단히 말해서, 애써 벌어서 아낀 돈을 자신이 못쓰고 다른 사람들이 쓰게 되므로 죽을 때 억울하다라는 거고, 그런 말을 내게 하는 이유도 있다. 먹는 거나 쇼핑이나 패션에 관심이 없기에, 사람들은 내가 돈이 '아까와서' 안 먹고 안 쓰는 줄 안다.
이쯤해서 자문해봤다.
"너는 돈 쓰기가 아까와서 안쓰는 거니?"
"죽을 때 안 억울할까?" 라고.
나의 대답을 정리하면,
당장 죽으면 나도 억울하다. 이제야 본격적인 인생 후반전을 시작했고, 아직 호기심이 남아있고, 하고 싶은 게 더 있기에 그 일부라도 충족시켜주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림도 좀 더 그려야하고, 책도 더 읽고, 영화도 더 보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물론, 열심히 말고, 그냥 쉬엄쉬엄. 다 못이루어도 좋아.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음식의 경우, 지금의 상태로 완전 만족이다. 양이 좀 작긴 해도 먹을 거 다 먹다.
패션은 조금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구입했으나, 이제는 최소한 브랜드 아울렛에 가서 사려고 하고, 색깔도 검정-군청-회색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동안은 강의 때문에 차분하고 어두운 색만 골랐지만 원래는 노랑-빨강-주황 등등 밝고 따뜻한 색이 잘 맞고 좋아한다. 헤어스타일도 짧게 자르기만 했으나 이제는 살짝 길러보기도 하고, 한번쯤 짧은 머리에 노란 염색을 하고 싶은데! 걍 한번 해볼까?
갖고 싶은 거 다 사라는 건, 글쎄요, 여기서 말하는 '갖고 싶은 거'는 주로 고급 혹은 명품을 의미하는 듯 한데, 이건 좀 안할 거 같다. 원래 물건 많은 걸 좋아하지도 않고, 비싼 거 사놓고 흐뭇해하거나 친구들 모임에 굳이 지니고 가는 성격도 아니다. 재작년에 엄마가 "여자는 밍크코트가 하나 있어야 해!"라면서 하나 사줬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 밍크코트가 있어야 한다고 거의 노래를 부르듯 했지만 어차피 안입을거라서 거절했는데, 그 때 백화점 매장 앞에서 본 엄마의 표정이 너무 단호해서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가 하나 샀다. 그거 딱 한번 입고 그냥 걸려있다. 가진 옷 가운데 최고가품이 옷장에서 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고맙지 않은 건 아니고, 나중에 내 나이 앞자리 숫자가 7로 바뀌면 그때 입겠지. 하지만 부디 엄마들이여, 자신의 로망을 자식에게 심지 마시오!
여행의 경우는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키는 중이다. 왠만하면 게스트하우스에 가지 않고, 2인 요금을 내더라도 비즈니스 호텔 정도로 간다. 숙소의 경우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상향시킬 생각이고, 지금 다리가 괜찮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지만, 나중에는 국내든 해외든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에 가서 놀멍쉬멍 할 생각이다.
하지만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우아하고 귀여운 할머니로 곱게 늙어가는 거다. 난 원래 예쁘지도 않았고 더 이상 젊지 않으며 계속 늙어갈 일만 남아있을 터이나, 조금은 '곱게' 늙을 수 있다. 그게 바로 내가 '갖고' 싶은 거고, 만약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억울함 없이 세상을 뜨게 되겠지. 하늘의 계신 분이 조금 도와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