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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이 없는 시간,

나는 ( )입니다.

by 브라카 Braka

나는 8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어떠한 타이틀도 가지지 않은 그냥 '나'다.


한창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그리고 막 졸업을 했을 때는 타이틀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컸던 것 같다. 고등학교 이후 줄곧 '미국 유학생'으로 살아왔고, 이 타이틀은 어떤 자리에 가도 장황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이해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막상 이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삶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고 빨리 다른 어떤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겼다.


지난 8월부터 나는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인 꿈의 학교에서 국제계열 TA로 일하고 있다. TA로서 내가 하는 주요 업무는 국제계열 선생님을 보조하여 고3 국제 대학 입시 과정을 함께 준비하고, 학생이 써온 에세이를 첨삭하고, 계열 관련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내가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아이들의 멘탈 케어이다. 입시 준비하는 고3 아이들과, 내년에 하게 될 고2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선생님보다는 친근한, 친구보다는 선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생 때 선생님들께서 내가 힘들 때 이야기 들어주시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사진으로 남겨주셨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든든한 서포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TA는 학교와 어떠한 계약관계없이 가장 작은 위치에서 가장 사소한 일을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행복할 때가 많지만, 당연히 지치는 순간도 있었다. 관계와 일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면 끝까지 이 악물고 버텼던 대학 생활과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일이 많은 것보다 간신히 지키던 멘탈이 흔들릴 때 가장 힘들었다. 내면적으로는, 이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찾아올 공백이 두렵고 불안했다.


나는 불안함에 움츠러들고 싶지 않았다. 막연함과 걱정으로 주어진 오늘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차근차근 내면을 쌓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지 않고 경제, 심리, 문학 등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읽은 내용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기 위해 책 내용과 내 생각을 함께 독서 노트에 정리했다. 그렇게 몇 권이 쌓인 후에는 책스타그램에 업로드도 했다.


또한, 몰입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다. 대학시절 이민, 이주 역사, 이주민 문화에 관심을 가지며 국제학을 전공하였고, 앞으로 다문화 국가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과 이주민의 관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민, 이주 그리고 사회학을 연구하신 고려대학교 윤인진 교수님의 강의를 시청하고 그분의 논문을 읽으며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공부임을 보았다. 대학원을 가게 될지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전문 분야를 정하기 전에 먼저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다. 취업 이후에도 관련 사회적 이슈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논문도 읽을 생각이다.


단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 단어도 자연스럽게 늘 줄 알았는데, 현실에 치여서 오히려 단어를 위해 공부 시간을 따로 내기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 단어를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얼마 전에 Word Smart I을 사서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단어와 한국어 정의만 보기 바빴다면, 지금은 단어의 영, 한 정의, 그리고 예제 문장까지 꼼꼼히 보며 공부하고 있다.


타이틀이 없는 시간이 불안하기만 했던 초반과 다르게, 지금은 오히려 타이틀이 없는 공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시간이 말 그대로 비어있는 시간이 아닌, 어느 때보다 가득 채워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아우라를 가진 사람은 그 아우라를 하루아침에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그 사람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생각이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아우라와 전문성을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미래를 바라며 불안해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이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 아우라 있는 내가 되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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