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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다운 삶을 산다는 건

by 브라카 Braka

대학 시절부터 꼭 붙어 다니던 친한 언니와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취업준비를 위해 고향인 포항을 떠나 서울로 이사 온 후 첫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여행이라 기대와 설렘이 있는 동시에 불안함이 있었다. 졸업 한지 어느덧 1년. 인턴과 취업을 위한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졸업 직후 할 수 있을 거라던 기대와는 달리 늦어지는 취업으로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여행동안 새로운 면접 연락이 오진 않을까, 핸드폰과 노트북을 붙잡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진짜 취업을 하고 나면 이렇게 가볍게 떠나는 여행은 한동안 가지 못할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취준생활이 길어지며 대학 때와는 또 다른 고민과 걱정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것 같은데 부족했던 걸까. 이메일에 '불합격' 글자가 늘어날수록 이미 지나가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나에게 '더 집중하고 노력했어야지, 왜 그러지 못한 거야, 왜 후회할 일을 만들어'라며 질책하고 꾸짖는 횟수도 늘어났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취미도 많은 나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좋아했던 그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게 귀찮아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점점 불편해졌다. 대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책을 읽고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원래 I성향이기도 했지만 갈수록 더 심한 I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먹는 걸로 푸는 습관이 있다. 마음 한 구석은 텅 빈 것 같이 공허한데, 뭔가를 먹으면 먹을수록 채워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공백이 커져만 갔다. 솔직히 외로웠다. 맘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이상하게 동굴 더 깊은 곳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굴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혼자 끙끙 앓으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토해내듯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새로운 운동도 배워보고, 한동안 멈췄던 산책도 다시 시작했다. 갑자기 떠난 여행도 동굴을 탈출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 중 하나였다.


후쿠오카의 날씨는 맑았다.


일기예보에는 우리가 머무른 3일만 날이 좋고 앞뒤로는 비 예보가 있었다. 다행히 날씨는 예보대로 맑았고, 심지어 날이 더울 정도로 해가 쨍쨍하기까지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걷고, 쇼핑하고, 잠을 줄여가며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꽉 찬 3일을 보냈다.


여행동안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삶에 어떠한 틀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그것에 끼워 맞추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틀은 겉보기에 좋아 보일지 몰라도 진짜 ’나‘와는 달랐으며, 틀과 나 사이의 갭 차이를 느낄 때마다 나는 고통받았다.


이상과 현실의 나는 다르기에, 결국 나는 어떻게 해서도 그 공백을 채우진 못할 것 같다. 그럼 나는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꽤 오랜 시간 만들어온 그 이상적인 틀을 깨고 온전한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 나는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것도 당장 내 머릿속의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갭이 너무 컸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취향과 관심사조차도 좀 더 고상하고 있어 보이는 걸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진짜 즐거워하는 것들을 외면하고 억눌렀다.


여행을 하며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 상품과 패키징을 보며 가슴 설레하는 나를 보았다. 밝은 색 옷을 입고 언니와 가볍게 장난치고 웃는 내가 좋아 보였다. 궁금한 식당에 찾아가 음식을 음미하고 또 같이 평가도 하며 진지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한없이 못마땅하고 지적할 부분만 보이던 내 모습이, 오랜만에 특별한 이유 없이 예뻐 보였다.



나를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내가 행복하고 가슴 설레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지금 하는 행동이 나를 위한 것인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귀찮고 성가신 것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과정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평생 닿을 수 없는 허상을 쫒지 않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충분히 사용하며 관계 속에 살아갈 때 비로소 나는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문제가 단지 여행을 다녀온 것 만으로 단숨에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있던 것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은 짧았지만, 오래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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