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저런 구차한 이유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잘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의지를 갖고, 조금만 더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했다면 효도라는 게 멀리 느껴지는 개념이 아니였을탠데 말입니다.
작년 이맘 때쯤 설을 맞이해 고향인 대전을 내려갔을 때입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고는 가슴이 정말 먹먹하고, 숨이 잘 안 쉬어졌습니다. 어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멍해지고 깊은 한숨이 밀려왔습니다.
어린시절 저를 데리고 꿈돌이동산을 가셨던 어머니. 버스로 한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그곳은 정말 신났습니다. 입장권을 구매할 때, 없는 형편에 자신의 필요를 아껴 자식에게는 좋은 경험을 하나라도 더 체험시켜주시려 했습니다. 제 손을 잡은 체 입장권 매표소 위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고 한참을 고민하셨습니다. 고민 끝에 3가지 자유 이용권을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곳에 서게 한 뒤, 사진을 찍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신나는 마음을 표정과 자세로 표현했습니다. 그때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히 단발머리에 오렌지 머리를 하신 그리고 엄격했지만 그날만큼은 항상 웃음을 지어주셨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도 놀이동산을 처음가보셨기 때문에 그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기 넘치시고, 영원히 젊음을 가지실 것 같던 어머니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19년도 하반기에 취업이 돼, 출가를 할 때도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대전에 도착해 문을 열자 자신의 방에서 쫄래쫄래 뛰어오시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푹패인 주름, 왜소해진 체구, 작아진 목소리가 눈에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들~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며 저를 껴안으셨습니다.
나무에 관심이 없으면 잘 안보이지만, 가끔씩 산이나 공원을 산책하시다 보면 나이든 나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젊고 생생한 나무들 사이에 있기에 외관만봐도 연약하고 곧 운명을 달리할 것임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수많은 풍파를 맞이하고 시대를 경험했기에 내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시계에는 예외가 없기에 그 나무 또한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많은 경험, 생각, 후회, 아쉬움, 관계 등이 있지만 그 모든 걸 뒤로한 채 떠나야만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 해도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숫자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죽어가는 나무에 “생각하기 나기 나름이야. 조금만 더 젊게 살아봐.”라고 말한다고 해서 젊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장과 변화에 대해서는 맞지만, 생물학적 시계를 멈추게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평생을 어머니로서, 가장으로서, 선생으로, 친구로서 살아오셨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 반발할 수 있었지만, 온전히 자식인 제가 걱정된다며 여자로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본인으로서의 삶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집에 오면 나무처럼 한결같이 계신 어머니를 뵐 수 있습니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소를 집중합니다. 그래서 시든 나뭇잎이 가을에 보이고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로 남습니다. 어머니는 수많은 겨울을 나시다, 이제 점점 보낼 수 있는 겨울이 얼마 안남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에 있는 주름이 저에게 큰 먹먹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의 주름, 왜소해진 체구, 잦은 병치례, 떨어지는 회복력이 시든 나뭇잎과 같습니다.
이제 생물학적 시계가 다되가심을 당신께서도, 저 또한 느낍니다. 시든 나뭇잎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친구, 은사님, 선배, 후배 등 그들의 에너지를 쏟아 우리에게 행복, 사랑, 감사함을 알려주신 분들입니다.
‘나이란 뭘까?’, ‘어떻게 나이를 들어야할까?’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철학책을 읽을 필요도, 수많은 논문을 읽을 필요도, 유튜브에 들어가 명사들의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위를 돌아보며 그들의 삶을 보면, 어느순간 우리 눈에는 해답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자신부터 시작해, 사랑하는 이들, 주변 사람들, 사회까지 시든 나뭇잎이 되도록 살 수 있는 나무가 되기실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