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아이엠히어로>(2018)
*이 글은 인디매거진 숏버스의 글입니다*
때 묻은 과거(舊)를 재정비하여 새로운 미래(新)를 꿈꾸는 희망찬 도약. 정비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불량 건축물이 밀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 개선 등의 목적으로 시행하는 재개발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소외계층, 주로 독거노인들에게 재개발은 그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하다. 삶의 터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는 또 다른 시작이 아닌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시간일 뿐이다.
잿빛의 판자촌, 겹겹이 쌓인 고지서, 언제 철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허름한 달동네. 영화 <아이엠히어로>의 광덕은 재개발 지역에 사는 독거노인이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쪽방에서 광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fresh한 소주를 마시며 TV를 시청하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재개발 용역팀의 철거 안내 통보로 인해 광덕의 터전은 침해당한다.
이 영화의 첫 번째 관람 포인트는 황혼기에 접어든 광덕과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한 민준의 우정이다. ‘수퍼마켙’에서 소주를 사들고 가는 광덕은 후레쉬맨이 존재한다고 믿는 민준을 만난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소외감을 느껴 울고 있는 민준에게 광덕은 아이스크림이라는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광덕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민준. 반백년 넘게 차이 나는 이들의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민준은 광덕을 쫓아다니며 후레쉬맨이 되어달라고 떼쓴다. 당연히 광덕은 거절한다. 광덕의 집 앞에 놓인 타고 난 연탄재처럼 광덕은 존재성을 잃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광덕은 후레쉬맨이 되어달라는 민준의 떼를 받아들인다. 후레쉬맨이 된다면 손주 장현이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두 번째 관람 포인트는 광덕이 후레쉬맨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광덕은 민준의 과외를 받으며 후레쉬맨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TV 속 후레쉬맨이 아니더라도 손주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민준은 광덕에게 “지구는 할아버지 손에 달렸어.”라는 어마 무시한 압박감을 주고 광덕은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등장!”을 외치며 이마의 핏줄을 세운다. 이러한 몽타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이들의 우정을 과시하며, 광덕이 후레쉬맨으로 변신한 모습은 광덕의 존재성을 뽐내기에 충분한 미장센이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관람 포인트는 광덕이 진짜 후레쉬맨이 되어 재개발 용역팀(악당들)과 맞서는 액션씬이다. 민준과 장현이 재개발 용역팀에 잡혀 혼나고 있자 광덕은 fresh한 소주의 기운을 받아 진짜 후레쉬맨으로 변신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악당들과 맞서는 액션씬은 이전과는 다른 판타지 장르를 연출하며 액션의 경쾌함을 선사한다. “지구 방위대 fresh맨 등장!” 과연 후레쉬맨은 악당들을 물리치고 민준과 장현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 <아이엠히어로>는 재개발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독거노인 광덕의 수세적인 삶을 첨예하게 파고든다.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라는 걱정은 비단 광덕의 걱정뿐만이 아닌 쪽방에서 공허함을 대면하는 독거노인들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자신의 집 대문에 대놓고 ‘철거’를 써놓는 사회에 큰소리 한번 칠 수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관심, 단지 그것뿐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광덕은 후레쉬맨이 되어달라는 터무니없는 민준의 떼가 어쩌면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광덕과 민준의 후레쉬맨 소동이 잿빛의 판자촌에 굳건한 생기를 피워냈으니 말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이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