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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섯 Aug 30. 2023

떨어진 사람이 쓰는 글

떨어지기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이미 작가가 된 사람이 쓴 에세이, 당선자 인터뷰, 작가가 되는 법... 이런 책들은 차고 넘치는데 왜 공모전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쓴 이야기는 없을까? 이 갑갑함, 무기력, 우울을 나누고 싶은데 나눌 사람이 없어서 나는 점점 더 작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간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박수 치는 사람이었다('박수를 치다'는 비문이지만 지금은 이 어감이 필요합니다). 같이 글 쓰던 문우들이 하나둘 등단하고 책을 내는 동안 나는 늘 뒤에서 박수만 치고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들은 충분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고, 또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일말의 기대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모임에 14명 쯤 되는 문우들이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작가'가 되었을 때 나는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이 바로 내가 되었을 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영원히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아무것도 아닌 단 사람으로 남을까 봐 절망하면서도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환하게 웃던 그 기분을 말이다.


여러 해 떨어지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감정은 질투였다. 잘 쓴 글을 보면 그 작가가 갓 데뷔한 신인이든 문학계의 거장이든 가리지 않고 질투가 났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렇게 잘 쓰는지 처음엔 부러웠고, 나중엔 샘이 났다. 신인한테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큰 산에게도 질투를 느끼는지 그런 내 자신이 같잖고 한심했다. 망생 기간이 길어지면서 얼떨결에 당선되었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쓴 글이 덜컥 당선되었다는 류의 소감을 읽으면 온종일 우울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작가를 겸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었다. 왜 나는 오로지 글만 쓰는데도 안 될까.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말은 응원인 줄 알면서도 화가 났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하고 못난 마음이 올라오면 나조차도 나 보기가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까지 비뚤어진 건지. 글도 형편없는데 인간성까지 잃은 것 같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매우 사악한 인간 같은데 저런 마음을 품은 건 극히 잠깐이었다는 걸 밝히고 싶다. 오히려 좋은 작품을 읽으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행복했고, 고마웠다.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읽는 사람이었고,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미정이지만 언제까지나 독자일 것은 확정이기에 내게 있어 작가와 작품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탈락해도 당선작이 좋으면 일면식도 없지만 진심을 다해 마음으로 축하를 전했다.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당선작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주를 퍼붓거나 출판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까 무서운 인간이라고 오해는 마시길. 그나저나 더 엇나가기 전에  나도 공모전에 한번 붙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부끄럽고 창피하니까 내 글은 공모전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처럼 그랬다고. 처음엔 '언젠가는 되겠지' 여유를 부리다가 조금 지나서는 불안해지고 더 지나서는 미워지고 아주 나중에는 슬퍼지더라고. 푸념처럼 수다떠는 기분으로 내 글을 읽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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