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수상작이 발표 되면 습자지보다 더 얇은 내 귀는 또다시 팔랑대기 시작한다.
'이런 걸 써야 당선된다니까!'
수상작의 장르가 판타지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이 세상에 없는, 하지만 어딘가에는 꼭 있었으면 좋겠는 환상과 마법의 세계를 나도 써 보고 싶고 '판타지 이런 걸 써야 당선된다니까!'
SF가 당선되면, 그래 역시 미래의 주역들에게 꼭 맞는 옷은 sf 동화지. 지금 여기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왔잖아. 'sf 이런 걸 써야 당선된다니까!'
그러다가 저학년 의인화 동화를 읽으면, 쉽고 간결한 언어로 삶의 정수와 철학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짓고 싶고, '의인화 동화 이런 걸 써야 당선된다니까!'
예리한 리얼리즘 동화가 수상작에 오르면 나 역시 어린이의 삶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적확한 언어로 짚어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리얼리즘 이런 걸 써야 당선된다니까!'
아, 그래서 나는 지금 뭘 쓰고 있냐면요.
예 그러니까, 판타지를 써 보려고 구상을 하다가 sf 공부를 하려고 일단 과학 전문 잡지도 구매해 보고 에...그러다가 지난 번에 쓰다 만 리얼리즘 장편을 일단 완성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인화 동화부터 후딱 써 볼까? 뭐 이런 상태입니다.
훌륭한 작가님들을 보면 대게는 자신만의 뚜렷한 장르가 있고, 또 고학년이면 고학년, 저학년이면 저학년에 특화된 분야가 있던데, 일단 나는 색깔이 없다.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란 판국에 이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내가 어떤 분야의 어떤 글을 잘 쓸지 모르는 상태라면 이것 저것 많이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기엔, 사실 뜨끔하다. 어느 것도 잘하지 못하는 상태의 다름아님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