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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섯 Jan 03. 2024

오탈자 신고 하시나요?

출판사의 답신으로 쌓는 내적 친밀도

책을 읽다 보면 오자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가능하면 출판사에 연락해 이를 알려주는 편인데,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우선 이 단어가 정말 오탈자가 맞는지 앞뒤 문장을 다시 읽어본 다음, 개망신을 피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에 들어가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는 단어가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한다.


오탈자임이 확실해 지면, 책의 뒷면에 적힌 출판사 메일 주소를 확인해 메일을 보내게 되는데, 회사 메일 주소가 표기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홈페이지 주소도 메일 주소도 아무것도 없는 회사가 있다. 그러면 친히 포털 사이트에 해당 출판사 이름을 검색해서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 메일 주소(?)를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긴 메일 주소를 메일함에 써 넣는 것도 은근히 귀찮은 일 중 하나다.


그렇지만 내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같은 업계(?)에 있다는 모종의 동료 의식... 같은 게 있을 리 없고, 외로운 방구석 망생이의 소소한 취미 정도라고 말해 두자.


그런데 이게 해가 쌓일 수록 재미난 게, 거의 99%의 출판사에서 답신이 오는데 그 멘트가 출판사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이다.


대개,


저희 도서를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려 주신 내용은 다음 쇄에 수정,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가 기본값인데,


최근에 받은 한 메일에서는 '이렇게 메일 주시는 일이 쉽지 않은데'라고 말씀해 주셔서 눈물이 핑 돌 뻔했다. 더군다나 그 출판사는 '-는 법' 시리즈로 유명한, 내가 평소 너무나도 좋아해 마지않는 회사라는 점에서. 오탈자 확인 메일마저도 이토록 독자를 감동시키다니! 그날 아침 나는 내가 글쓰기로 돈을 벌게 된다면 이 출판사의 책 시리즈로 책장 한 칸을 채우리라는 다짐을 다. (제가 그동안 도서관에 희망 도서 신청은 많이 했어요. 흑흑.)

아, 그리고 하나 더. 이 출판사로부터 답신이 온 시각이 토요일 오전 6시 9분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둔다. 주말 새벽부터 일하고 계셨던 것이냐며 메일함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던 기억도 덧붙인다.


또 기억에 남는 출판사는 외국의 도서를 번역 출판한 회사였는데, 등장 인물의 이름이 잘못 기재돼 있었다. 그 오자 메일을 보낼 때는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싶어 그 챕터를 몽땅 정독하여 다시 읽었고, 결국 인물의 이름이 잘못 쓰여진 게 맞는다는 확신을 가진 뒤에야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두 달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너무 늦게 답신을 보내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늦게라도 답장을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는 메일이 왔다. 신생 출판사인 것 같았는데 아마 회사 메일까지 확인할 여력이 안 되었으리라. 재쇄에 들어가면 수정본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중히 사양했다. 이름의 오기는 나름 큰 사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서너줄에 불과한 아주 짧고 건조한 메일이지만, 이 속에서도 출판사의 색깔이나 일하는 분들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물론, 반대의 경험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오탈자 메일을 보냈을 때 답장을 받지 못한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을 때도 여전히 답장이 없었단 거다. 물론 투고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고 해서 모두 답신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답신과 무응답의 비율이 반반이었는데, 아무튼 독자의 오탈자 신고도, 투고도 모두 무응답으로 일관한 출판사에 대해서 애정이 생기기는 힘들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전까지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서 말이죠.


덧. 오탈자 메일은 출간된 지 1년 이내의 작품에만 하는 편이다. 1년이 지난 책은 아마 누군가의 제보(?)가 이루어졌으리라고 보는 것인데, 간혹 5쇄 이상의 책에서도 발견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중쇄본일 때는 몇 쇄의 책이라고 밝힌다.  (이게 뭐라고 나 왜 전문가 같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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