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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1. <연락하지 않는 이유? 사실은 그리워서야>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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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부재의 시간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끝내 전해지지 못한 마음만이 머물러 있었다


시간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흘렀고
알람은 익숙한 소리로 하루를 깨웠다.
그녀를 향해 열려 있던 빈자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지된 풍경 안에서 나의 감정만이 천천히 움직였다
닫혀 있던 마음의 문들이 하나씩 열리고
그 아래 오래 눌려 있던 감정들이
가만히 나를 스치고 있었다


상실은 단지 누군가를 잃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떠났지만 더 낯설었던 건
그 없이도 살아가고 있는 낯선 나였다


남겨진 일상은 나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비추었고
나는 그 부재의 풍경 속에서 비로소
내 존재의 윤곽을 또렷하게 목격했다.
상실의 끝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다




침묵은 끝이 아니라
흩어지지 못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은 사라져도
그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별은
그녀와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나와 다시 살아내는 일이다





<연락하지 않는 이유? 사실은 그리워서야>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밤이 많아졌다.


불 꺼진 방
미지근한 휴대폰 배터리 온기만이
내가 아직 이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너의 문자.
그날 이후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못했다.’


보고 싶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너의 이름 앞에서 손끝은 멈춰버렸다.
화면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문자 메시지 전송 버튼 앞에서
숨을 고르는 밤들이 쌓이고 쌓였다.


‘잘 지내?’


그 짧은 세 글자를 보내기 위해
견뎌야 할 침묵과
돌아오지 않을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보내지 못한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전해지지 못한 감정들은
방 안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나는 너를 부르지 않으면서도 부르고 있었다.
누르지 못한 전송 버튼 위로
흘러가지 못한 안부가 지워진다.


망설임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지금도 남아 있다.


너 없는 시간 속에서도
너에게 말을 걸었다.
곁에 없는 너를 향해 혼잣말로
안부를 묻는 밤.


끝이라는 말보다 더 두려운 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너는 모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시간들이
너를 가장 깊이 부르고 있었다는 걸.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휴대폰 화면만 바라본다.
오늘도 네 이름 앞에서 멈춰 선다.


말하지 않는 건 포기해서가 아니라
아직 마음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오늘도 전송되지 않은 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남겨졌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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