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사람을 잊는다는 건
그 사람을 놓아주는 일이 아니라
한때 이해하려 애쓰던 마음을
더는 움직이지 않게 묶어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잠들기 전 유튜브에서 낯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별을 견디는 법’
‘그 사람의 속마음’
‘연락이 오지 않는 사람 심리 분석’
이별을 감지한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감정들을 멋대로 검색해서 대신 설명해 준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녀가 남긴 침묵의 이유를 해석해주진 못했다.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타로 점집을 찾았다.
펼쳐진 카드 한 장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민다.
운세 한 줄이 그녀의 마음이 아직 내게 남아 있다고 속삭인다.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를...
익숙한 풍경마다 자꾸 그녀가 겹쳐 보였다.
그녀는 이미 멀리 갔는데
나는 여전히 그녀를 지워내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되돌아오지 않을 그녀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럴수록 그녀의 침묵을 이해하려던
내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오늘도 손가락은 무의식처럼
또다시 유튜브를 눌렀다.
이젠 기대가 아니라 습관이 된 미련이었다.
강요된 내 침묵은 하나의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분노와 절박함도 있었다.
상처받을까 봐
상처를 줄까 봐 침묵하는 것뿐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체념이 때로는 무력감과 애증이
미련과 원망을 뒤엉키게 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감춘다.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내 마음을 가슴 깊이 묻어두는 일
그것이 침묵이었다.
‘혹시, 나만 이런 걸까.’
‘그녀도 같은 밤을 보내고 있을까.’
시간은 앞으로 흘렀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뒤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사랑을 잃고 나서야 사랑을 이해하려 들었다.
왜 떠났는지, 왜 끝내 침묵했는지
이 모든 ‘왜’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이제는 미련조차 포기하고 싶어서 묻는 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이별은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도 말없이 남아 있었다.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흔들면서...
침묵은
때로 분노였고 때로는 체념이었다.
침묵은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시간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가장자리.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밤의 끝자락이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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