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S4-1 <사랑을 건너다 나에게 도착했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by 구정훈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가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전국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9406477



<사랑을 건너다 나에게 도착했다>


그녀를 향해 걷는 여정인 줄 알았다.
그녀만이 내가 도착해야 할 유일한 종착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길은 끝내 나에게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무너진 다리 위에 남은 건
허망한 꿈도, 간직하고픈 추억도 아니었다.


그저 공허라는 깊은 심연 속에서
자신조차 잃어버린
낯설고 고립된 나 자신였다.




나는 다리를 놓았다.
외로움이 끝없이 흐르는 강 위에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 마음 위에
조그마한 꿈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그 길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다고 믿으며.


나는 확신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이 다리 위에 설 거라고.
내가 걸어간 만큼 그녀도 나를 향해 걸어올 거라고.
그래서 확신했고, 그래서 자만했다.




그러나 그 다리는 끝내 누구도 건너지 못했다.
종착지도, 방향도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였으니까.


우리는 각자의 환상 속에서
혼자 걸었고,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너무 앞서갔고
누군가는 뒤쳐진 채 멈춰 섰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흔들린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내가 믿었던 확신이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흔들리고 불완전한 그 다리 위에서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다.


“함께 건너자.”


그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이기를 바라는 외로운 위탁이었고
혼자되는 것이 두려운 집착의 외침이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흔들리는 다리 위에는 나만 남겨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뒤에야
사랑이라 믿었던 위선이 그 민낯을 드러냈다.


그것은 맹세도 약속도 아닌 누군가의 희생이었고

배려인줄 알았던 나만을 위한 자기만족이었다.

서로를 이상화하고
그 허상에 꿈을 얹은 환상일 뿐이었다.


외로움을 감추고 서로를 탐했던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다리는 무너지고
인연이 희미해진 자리에서
나는 홀로 서 있다.


그 잔해 위에서 나는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이름을...


그것은 홀로 남겨진 이가
더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외치는
쓸쓸한 선언이었다.




결국
누구의 마음도 닿지 않는 삶의 경계 끝에서
나는 나를 건져 올려야 했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도
끝내 남은 것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이었다.


부서진 사랑의 잔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닿지 못한 마음
그리고 지독한 후회가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다시 살아내야 할 사람도
다시 걸음을 떼야 할 사람도
결국 나였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마음도 닿지 못한 채


이제는
나 자신을 건너야 하는
경계 앞에 멈춰 서 있다.


#9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누군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했던 그 문장. 지금 당신의 곁에 머물러줄 문장들이 책이 되었습니다.

#9의 베스트 에세이, 지금 전국 서점에서.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9406477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098182


[알라딘문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152502&start=slayer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11화S3-10.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